찬란한 존재들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그려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순간들
브라이언 도일 지음
written by Agnes

언젠가 《일상 예찬》이라는 17세기 네덜란드 회화를 다룬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 츠베탕 토도로프는 이전까지 역사나 종교, 문학 작품 등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이 1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실제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로 눈을 돌려 일상을 보았던 것에 주목한다. 실제로 이 시기 네덜란드 회화를 보면 그 시절 네덜란드인들의 일상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양파를 다지는 여인, 우유를 따르는 데 집중하고 있는 여인의 모습, 혹은 네덜란드 어느 도시의 뒷골목 풍경을 그린 그림 등 잔잔하고도 소박한 현실의 모습 그대로이다. 하지만 분명 그 그림 속에는 우리가 무심코 놓치기 쉬운 삶의 아름다운 순간이 담겨 있다.
많은 이들이 에세이라는 장르를 즐겨 읽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에세이야말로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삶의 순간들을 섬세하게 포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저 평범하고 사소한 순간에도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찬란한 존재들》도 이러한 미덕을 고루 갖춘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브라이언 도일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삶의 다채로운 순간들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한 바를 들려준다. 이 책에는 그가 사랑했고, 또 사랑했던 인생의 많은 순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의 표제작이자 제목이 되기도 한 ‘찬란한 존재들’에는 자기 손을 꼭 잡고 다니던 아이들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애틋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가 눈만 똑바로 뜨면 천사는 어디에나 있는 듯하다.
그들은 꾸밈없고, 유쾌하고, 끈질기고, 화사하고, 찬란하여
어찌해도 숨겨지거나 감춰지거나 걸러지지 않는다.
가장 편협하고 소심한 사람들조차 이따금씩 그들을 알아보듯,
제대로 보는 눈만 있다면 그들이 누구인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다.
생기 있고 청초한 겉모습을 입은 거룩하고도 하찮은 빛의 존재들임을.
그들이 당신의 스승이자 무한한 사랑을 전하는 대리인,
경이로운 사촌과 동료임을 벅찬 마음으로 깨달을 수 있다.
그들은 기적이요, 기도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노래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이 단순히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는 것에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이책에는 참으로도 다양한 주제가 다채로운 시선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저자가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는 기본적으로 애정이 깃들어 있다. 작은 야생동물인 타운센드 두더지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글에서(‘망자’), 오랫동안 한 동네에서 자리를 지키며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했던 가게가 문을 닫게 된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느끼며 씁쓸함을 느끼게 해 주는 글에서 (‘어느 슈퍼마켓의 죽음’) 잘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때로는 총기 소지 같은 사회적 문제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총알’).
무엇보다도 이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가톨릭 신앙이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난 그에게 신앙은 삶 그 자체였다. 이러한 신앙을 바탕으로 한 여러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내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바로 ‘힘든 일이니까요’라는 글이었다. 이 글은 어느 수도원을 방문했다가 그곳의 한 수사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글이다. 저자는 수사에게 묻는다. 어쩌다 수사가 되었으며, 고독한 삶을 살아야 하는 이 삶에 뛰어든 이유가 무엇이냐고 말이다. 그러자 수사는 답한다. 그것은 힘든 일이기 때문이라고. 의아해하는 저자에게 수사는 나지막이 설명한다. 이 수도원에 사는 왜가리를 보고 있노라면 새들 역시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신의 영역에 속해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자신은 그저 겸허하고 신실하게 살고 싶기에 수사가 된 것이라고.
마치 한 편의 단편 영화 같은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글 속에 등장하는 수사님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동시에 나는 나의 신앙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또 어떤 신앙인이 되고 싶은지 묻게 되었다. 어쩌면 하느님과 늘 함께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그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내게 주어진 일을 해 나가면서 소박하고 단순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느님께서는 나약하고 실수투성이인 인간을 그 자체로 사랑해 주시는 분이시니 말이다.
이처럼 이 책에는 때로는 가슴이 뭉클하게, 때로는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띠게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잠시 하늘을 바라보며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을 찾고, 그 순간 자체를 즐기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삶이라는 캔버스에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와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이 언제나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