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제어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면, 삶을 이해할 수 없다
마르크 비트만 지음
written by Juliana

시간 도둑을 찾고 싶어서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는 사람들의 시간을 도둑질해 수명을 연장하는 ‘회색 신사’들이 나옵니다. 모모가 사는 마을의 주민들은 ‘시간이 없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회색 신사의 꾐에 넘어가 삶에서의 진정 중요한 가치들을 잊은 채 하루하루를 초조함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지내지요. 어린 시절에 읽었던 이 소설이 이제와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매일 시간에 쫓겨 사는 나의 일상이 소설 속 주민들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시간을 줄여준다는 각종 혁신적인 기술과 아이템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됨에도, 우리는 왜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까요? 어쩌면 문제의 답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던 중, 이 책 《시간 제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감각’한다는 것
《시간 제어》는 뇌과학과 심리학 분야의 이론적 배경과 생활에서의 실제적인 예시들을 통해 우리의 시간 감각에 대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저자 마르크 비트만은 인간의 시간 지각을 연구하는 심리학자로 우리가 시간을 인식하고 처리하는 방식을 최신 연구가 밝혀 놓은 곳까지 알기 쉽게 설명합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가 시간에 대해 직관적으로 알고 있던 느낌들이 사실은 뇌과학적인 근거가 있었음이 밝혀집니다. 예를 들면 인생의 시간에 대한 농담 중 10대의 시간은 10km/h, 20대는 20km/h, 30대는 30km/h…로 흘러간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다는 말이지요. 《시간 제어》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 현상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같은 1년이라는 시간이 나이가 들수록 비교적 짧아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0세 어린이에게 1년이란 인생의 10분의 1이나 되는 시간이지만
18세 청소년에게 1년이란 인생의 18분의 1이다. (중략)
살아온 시간 감각을 설명하려면 과거와 미래의 관점을 고려하는 편이 좋다.
《시간 제어》 중에서
인간의 발달 과정을 생각해 볼 때 유아기와 청소년 시기는 늘 새로운 경험을 하는 때입니다. 반면 성인이 된 후에는 새로운 경험이 점점 줄어들며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이 별로 없으므로 주관적 시간이 짧아진다는 것입니다. 같은 10분짜리 동영상이라고 해도 프레임 단위로 새로운 장면이 담긴 영상과, 비슷한 한 두 장면만이 담긴 영상이 있다면 당연히 전자가 선명하고 강렬하게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인간, 시간, 문화
우리가 ‘현재’, ‘지금’이라고 말할 때 이는 과연 몇 초의 시간을 뜻하는 것일까요? 추상적인 질문 같지만, 저자는 뇌과학 분야의 최신 연구들에 비춰 인간이 지금이라고 느끼는 시간은 ‘3초’라고 볼 수 있다는 답을 내립니다. 시간을 지각한다는 것, 즉 현재를 느낀다는 것은 시간적인 특성과 리듬, 그리고 움직임을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지각심리학 분야에서 이뤄진 연구 사례는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는 음악의 멜로디와 박자, 발화된 말소리가 하나의 음성 단위로 인지되는 시간적 범위, 하나의 그림이 두 가지 이미지로 인식되어 시각적 착시를 유발하는 토끼-오리 그림이 서로 반전되는 데 걸리는 시간 등은 모두 2초에서 3초 사이입니다. 이 책에서 제시해 준 관점을 통해 현재를 3초의 시간으로 바라보니, 호흡을 통한 마음 챙김이나 현재에 집중한다는 감각이 조금 더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시간 제어》는 시간 지각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만이 아닌 사회적 맥락에서도 바라봅니다. 인간의 시간 감각이 다양한 인지 기능과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맥락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에 대한 분석이었습니다. 정확한 매커니즘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지만 인간에게는 빛의 주기, 수면-각성에 따라 작동하는 생체 시계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큰 맥락에서 인간은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이 들지만, 사람마다 타고난 성격이 다르듯이 생체 리듬도 제각각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전반은 아침형 인간에게 리듬이 맞춰져 있는 탓에 저녁형 인간은 자신의 패턴과 사회의 패턴이 맞지 않는다고 느끼는 ‘사회적 시차증’을 겪을 수 있습니다. 효율적인 시간 관리를 주창하는 많은 자기계발서가 새벽 기상을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에 비해, 이 책은 뇌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자신에게 맞는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깃든 책
이 책은 뇌과학과 인지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독자도 시간 지각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시각 자료와 구체적인 예시를 활용하며, 최신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게 해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매력은 한 스푼의 철학적 사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 소개를 보면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책 전반에서 뇌과학적, 심리학 분야의 이야기에 더해 이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 주는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6장의 ‘자아와 시간’은 자의식을 구성하는 데 있어 시간이 갖는 의미를 탐구하고 신경생물학이 자아상에 대해 지금까지 해온 연구를 정리하고 있어 시간에 대해 갖고 있던 지적인 호기심이 어느 정도 충족되었습니다.
저자는 점점 빨라지는 삶의 속도를 주체적으로 제어할 줄 아는 기술은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기본 소양이라고 말합니다. 이에 더해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제어하는 능력은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더 많이 새겨 넣을 수 있는 기술이라고 말입니다.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바를 의식적으로 제어해야 한다. (…) 삶의 속도를 제어할 줄 아는 사람은 자유 시간과 자기 자신을 찾는다.” 시간 없다는 말을 달고 사는 당신에게, 오늘도 시간 도둑을 찾고 있는 당신에게 《시간 제어》 일독을 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