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신비를 완성하는 마지막 일곱 말씀

서평

사랑의 신비를 완성하는 마지막 일곱 말씀

2025. 05. 29
읽음 15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요한 1,1)

 

요한복음을 시작하는 말씀은, ‘하느님이 곧 말씀이라는 선언이다. 이 명제는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분이시므로 그분의 말씀 또한 완전하며 세상의 시작부터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논리를 내포한다. 완전하신 하느님의 말씀, 즉 로고스에 비하여 인간의 언어는 불완전하다.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의미는 화자와 청자 사이에서 미끄러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은 어떠한 사물도 있는 그대로 직관하지 못하며 어떠한 감정도 온전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인간들 사이의 소통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절대자인 신과의 소통만큼 충만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신의 언어가 인간의 말로 표현되면 어떨까?

 

현대의 뛰어난 신비가이자 영성 작가인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는 신이며 동시에 인간이었던 예수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말에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언어의 통로를 찾는다. 《예수의 최후 기도》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 남긴 마지막으로 남긴 일곱 마디의 말, 즉 가상칠언 안에서 교회의 일곱 성사를 묵상하는 소품집이다. 이 책은 일곱 마디의 말과 일곱 성사를 비교하는 단상으로 이뤄진 작은 책이지만 그 내용과 깊이에 있어 사순을 묵상하기에 충분하다. 하느님이 저자에게 주신 영감은 십자가의 사명을 완수하며 죽어가는 이가 유언으로 남긴 말에는 구원을 확정하는 생명력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각각의 말씀은 하나의 성사와 유비의 관계를 갖는다. 저자는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비전 안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고해성사,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와 병자성사를,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와 혼인성사를,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와 성품성사를, “목마르다.”와 성체성사를, “이제 다 이루었다와 세례성사를,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와 견진성사를 맞대어 비교한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라는 당신의 어둔 밤을 통과하면서, 사명의 완수로 얻어낸 결실을 인간의 삶에, 교회의 형상에 선물로 주신다.

 

폰 슈파이어의 묵상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저 몇 마디 유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표징이자 생명력이 담긴 말씀으로서 교회 안에 여전히 살아 숨 쉰다는 것을 밝힌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남긴 첫 번째 말씀은 성자 그리스도의 사명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성부의 말씀이시며 그 자체로 하느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몸소 설명하고 가르치신 예수는 그가 지상에 내려온 바로 그 이유, 즉 인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힌다. 불완전함으로 하느님께 죄를 저지르면서 그것이 죄인지 인식조차 할 수 없는 딱한 처지의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마련해주시고자 예수께서는 고통의 잔을 받으신다. 인간을 대신해 지극한 고통을 받으며 무지한 그들을 용서해달라는 간청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악을 더 이상 죄악의 모습이 아닌 성자의 고통으로 바라보신다. 이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은 고해성사라는 신비로 교회에 새겨져 지금까지 현존한다.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 안에서 칠성사를 묵상하다보면, 하느님께서 내어주신 사랑이 성사라는 형태를 입고 계속해서 흘러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말씀들은 온전하기 때문에 자체로 구원을 성취하며,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영원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사순 시기를 보내며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들 안에 고요히 머물러 본다. 죽음을 앞둔 예수님께서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고통도 죽음도 아닌, 남겨질 이들이 느끼게 될 슬픔과 공허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랑은 그러한 두려움마저도 넘어서게 한다. 예수님의 완전한 사랑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두었고, 우리는 그 말씀의 참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와 같이 부르심을 받고, 주님의 일에 쓰인 이들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은총은 계속해서 교회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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