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춘의 기록
‘청춘’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어딘가 멋쩍다.
나이를 제법 먹은 사람이 회상하며 쓸 법한 말 같기도 하고, 일본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단어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 인생책을 소개하려 하니 이 단어 말고는 떠오르는 제목이 없었다.
그 시절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결국 청춘이라는 말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때의 나는 어리석을지라도 확신을 가지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지금은 나이를 먹어
보수든 진보든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는 쪽이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적인 배불뚝이 아저씨가 되었지만,
그때의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옳기 때문에 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에 사로잡혀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어쩌면 교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아직 세례도 받기 전이었고,
그 확신 속에서 불타고 있었다.
지금 소개하고 싶은 책은
그런 나의 의지를 불태우게 했던 책이다.
바로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다.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경제를 공부하는 것은 즐거웠다.
그러나 경제학을 전공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수학이 등장하고 문제를 풀기 시작하자
흥미는 금세 사라졌다.
마침 학교에 다니던 시기에는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이전에는 없던 '상경계’라는 말이 생겨났다.
취업에 유리하다는 말 때문에
그저 참고 공부를 이어갔다.
겁이 많았던 나는
정말 좋아했던 인문학이나 예술에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신세계였다.
일상 속의 현상을
경제학의 시각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했다.
비슷한 책들은 많았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저자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방식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책뿐만 아니라
저자의 사상에도 자연스럽게 끌리게 되었다.
그 흐름은 결국
내가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앞장서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가 유혹될 정도로 열심히 임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군대에서는
사회에서의 활동 기록 때문에 따로 불려가는 일도 있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에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러나 나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의연하지 못했다.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고,
할아버지가 6·25 참전용사라는 사실까지 말하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다.
결국 호국웅변대회에서 우승까지 하며
겨우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도 그 일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던 것 같다.
신념을 굽히는 일은
마치 스스로를 배신자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래서 취업 준비를 해야 할 시기에
나는 오히려 총학생회 활동을 하며
다시 한 번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그 시도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무너졌다.
함께 일하던 학생 간부들의 모습에서
나는 위선을 넘어선 어떤 역겨움을 느꼈고
결국 스스로 물러서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큰 변화는 몇 번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하느님을 알게 된 일이었지만,
그때의 경험 또한
내 인생에서 두 번째 정도로 큰 변화를 남겼다.
나 자신도 바꾸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겠는가.
나는 학생회도,
내무반도,
심지어 나 자신도 바꾸지 못했다.
세상의 정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좋은 곳에 취업한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밤에 눈물로 지샌 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동안은 세상의 기준에 맞춰 충실히 살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을 더 잃어버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다시 하느님을 찾았다.
불혹을 맞이한 뒤에야
비로소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소리보다
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람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싶어
성당으로 향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 사이의 고민만 늘어가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시는지를
알아차리고 살아가는 일이다.
외롭지 않기 위해
사람들 속에만 머문다면
성당으로 향했던 처음의 마음이
희미해질지도 모른다.
책 이야기는 많지 않고
살아온 이야기만 가득한 글이라
독자들이 혼란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책은
간접 경험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다.
그리고 그 간접 경험 속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하나의 작은 책이
내 젊은 시절의 방황을 시작하게 했듯
책은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인생책을 소개하는 자리이니
나에게 이만한 책이 또 있을까.
지금 돌아보면
왜 그렇게 살았는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 시작이 된 책이기에
이 책은 여전히 나의 인생책이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하느님은 결국 나를 이끌어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하셨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책도 궁금해진다.
인생책을 떠올리며
나의 20대와 30대를 돌아보았다.
대견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결국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성당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글을 쓰며
내 인생을 돌아보니
하느님의 손길이 없었던 순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내 눈물을 닦아 주실 수 있는 분,
내 슬픔의 깊이를 아시는 분.
그분이 계시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오늘도
조금 더 깊어지고
그분과 대화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