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익숙해져 있어서 그것에 집중하지 않았을 때, 당연하게 여겼을 때를 가장 주의해야 한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예전부터 봐왔으니 늘 그랬던 사람이라면서 넘겨 짚었을 때 모든 것은 더이상 경탄의 대상이 아니라 지루하고 따분한 대상, 귀찮은 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사람은 그리 단편적인 인물이 아니다. 비단 사람만 그럴까? 인간관계에서 말고도 매일의 미사 전례에 사용되는 입당송, 화답송, 복음 환호송, 영성체송은 아름다운 시편으로 대부분 구성되어 있지만 그저 당연한 것, 복음과 연결되는 부분이라서 인용해왔겠거니 하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작 시편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올해의 마지막을 함께한 책은 <시편, 기도의 언어>이다. 강론 중에 그날의 말씀에 대한 히브리어 원래의 의미를 소개해주시는 신부님이 계시면 더 폭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는데, 이번에는 시편에 담긴 가장 대표적인 40개의 단어들을 소개해주는 책과 만났다.
예전에 어디선가 겸손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만큼이나 다른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자기 자신에게 자비로워지는 것은 핑계대지 않는 것이구나. 왜냐하면, 늘 죄인임을 잊지 않는 것이므로. 죄를 지을 수 있는 유인이 있고 그 나약함이 항상 있기 때문에 죄인임을 잊지 않을 수 있고, 그래야 교만한 바리사이의 기도가 아니라 겸손한 세리의 기도를 할 수 있다. 내가 이것저것을 해서 감사하다는 것이 아니라, 또 내가 이렇게 기도하니까 노력의 대가로써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나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에 청하는 기도. 그래서 당신의 자비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자기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단점도 인정하고, 그래야 남과 비교하면서 자학하지도 않고 남을 깎아내리지도 않게 된다는 것.
맞을 수는 있지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 안에서 급한 일이 이것이라고 생각해도, 다른 부분이 더 시급한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겉보기엔 상대방을 위하는 맞는 선택지들처럼 보여도, 그 때와 장소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고. 세상의 눈으로는 복수정답이 있을 수 있지만 그 나비효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과의 식별이 필요한 것이다. 적절한 것과 적절하지 않은 것, 당신의 뜻과 당신의 뜻이 아닌 것을 가르기 위해서, 그래서 하느님 뜻만을 따르기 위해서.
신앙은 응답이라는 예전 한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많이 와닿았다. 마치 예수님이 손을 내밀면서 나 믿지?하고 여쭤보실 때 내가 그 손 위에 내 손을 얹고, 네! 하는 행동이 응답이라는 것, 믿는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교회를 믿는다는 신앙고백은, 교회의 구성원을 믿는 게 아니라, 또 우리라서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교회를 믿기 때문에 교회는 거룩하고 또 우리가 믿는 것이라는 것이 마음에 많이 남았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고, 교회를 통해 선을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므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까지 사람을 신뢰하고 믿었고 또 못박은 자들을 용서하심은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무한한 신뢰이므로. 단지 아버지인 하느님을 향한 믿음 뿐만 아니라, 인간을 믿으신 예수님이라는 것, 인간에 대한 신뢰.
사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어떤 선한(착한 X 마땅히 해야할 O) 행동을 하더라도 거기에 내 인간적인 마음이 없었다고 하기엔 어렵다. 하지만 오늘 할 묵주기도를 보면서, 내가 육신 안에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님으로 사는 것이라는 구절을 보고, 이런 작은 나를 통해서도 하시고자 하니 내가 굳이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다. 어떻게 보면 인정받음은 잘 하고 있음을 보장받고 확인받으려는 욕구 아닐까. 그러니 나의 자리에서 내 안에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굳이 확인받으려 나설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믿는다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마치 내가 예수님의 카메라, 전달자, 이런 것이 되는 것처럼.
평소에 하느님과의 만남을 갖지 않으면 정말로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실 것 같다는 병근병근 신부님의 강론말씀을 듣고. 평소에 자주 만나는 사람이라면, 친한 사람이라면 멀리서 보여도 손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겠지만 모르는 사람, 이제 막 한두번 볼까말까했던 사람은 설명을 해야 그제서야 알게 되거나, 설명을 하더라도 가물가물 하기도 한다. 예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 만약 우리가 미사 때만 잠시 앉아있다가 가고 일상생활에서 외면한다면, 친한 사이가 되지 못할 것이고 나중에 언제언제 미사를 갔었어요… 하고 설명하더라도 누구더라? 싶은 표정으로 벙 찔 수 있다는 것.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좁은 문'이 예수님 자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닮은 사람이 되어 그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문 앞에 있던 사람이 주님, 문을 열어주십시오 대신 주님, 저에게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좁은 문 앞에서 납작 엎드리는게 아니라 꼿꼿히 서서 저 기억 안나세요? 당연히 열어주셔야죠? 하는 태도로 서 있었으니, 그런 대답을 듣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로 이를 가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평소에 쌓고, 예수님과 닮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더라도 당신이 정말 저의 ‘주님’이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다면 이런 태도, 종교활동 혹은 종교이념을 나의 의로움의 근거로 내세우는 뻣뻣한 태도는 하지 않게 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끊임없이 힘써야 한다고 하신다. 언제 어떻게 이렇게 슬슬 내 내면이 흘러갈지 모르기 때문에, 그래서 매일 나의 약점을 아침기도를 하면서 인식하고 맡겨드리는 기도를 하는 것. 그렇게 내가 완벽하고 깨끗한 존재가 아니며 당신의 힘으로 당신의 뜻을 완수하게 해달라고 의탁하는 것.
사람의 마음이 꼭 밥그릇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느님의 은총은 누구에게나 항상 새롭게 부어지는데, 거기에 내 욕심과 내 뜻, 나의 계획만 있다면 그만큼은 하느님의 은총, 멋진 계획, 당신의 선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한 점에서 하느님은 안타까워하실 것 같다, 받지 못해서. 안 주시는 게 아니라, 받지 못하니까. 하지만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고, 그러니까 밥그릇 안이 깨끗하다면 매일 새로운 은총을 가득 받을 수 있겠지.
돌이켜보면 하느님께서는 나의 단점, 나약함을 꼭 쥐고 내가 훨훨 날아갈 수 있게 해주시는 분인 것 같다. 다만 그 도약이 나의 힘으로 되었다고 착각하고 너무 멀리 떨어져버릴 때, 그때 다시 어둠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날아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나서거나 따라가면 안된다는 것도. 사마리아인처럼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말고 꼭 매일 돌아와서, 그리고 다시 시작할 때 당신의 옆자리에 있어야한다는 것도.
그러니 배터리처럼 충전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를때 단순히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하느님께서는 충분히, 그것만으로도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죄를 지은 것 같다고, 깨끗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이유로 기도를 뒤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악마가 속삭인 핑계일 뿐이다. 소화 데레사 성녀의 비유처럼, 끓어오르는 용광로같은 하느님의 사랑에 나의 ‘안 깨끗한 상황’은 물방울 한방울 정도일테니까. 그래서 그것마저도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자리로 바꿀 수 있다는 것. 나의 연약함에서 당신의 굳셈이 드러난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이지 않을까.
이러한 의미에서 시편으로 드리는 기도는 참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절대 어려운 언어로 드리는 것도, 생소한 언어로 드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지극히 일상적인 언어인 나머지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시편. 하지만 시편은 어느 시편을 읽더라도 그 끝에는 바스러진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려서 다시 충전을 하게 해준다. 그렇게 다시 당신께로 내딛는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 희년을 마무리하면서 다음 해 목표를 세우고 있는데 내년에는 시편을 차근히 읽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한 글자, 한 글자에 담긴 그 의미를 걸어가보면서.
-서평 작성 서점명: 교보문고 / 아이디: oyk4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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