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 — 주님과 교회의 사람들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조심스럽게 대하는 은총.
2026년 5월 24일 성령강림대축일, 내가 뽑은 성령칠은 카드였다. 매사에 열심인 나는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 편이다. 그런데 하필 '경외'를 뽑고 나니, 하느님께서 "이번에는 네가 이것이 부족했구나" 하고 짚어 주시는 것 같아 놀랍고 감사하고 부끄러웠다.
부족함의 근원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러 성당에 가고, 그분을 흠숭하고 찬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불완전한 인간인지라, 우리는 잠시 길을 잃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그분께 드려야 할 사랑을 나눠 주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그분과 멀어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 마음이 자주 들다 보면, 성당에서 함께 지내는 분들을 향한 미묘한 불신으로 번지기 쉽다. 그것이 배척으로 굳어지기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이렇게 잡아 주신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감사했다. 현대 사회에서 악마가 가장 크게 성공한 일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이 부정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교회 공동체를 향한 잦은 걱정이 슬그머니 배척으로 넘어가려던 그 길목에서, 나는 다시 붙들렸다.
《사제들의 시대 공감》을 망설임 없이 고른 것도 그 무렵이었다. 청년성서모임 위주로 활동하는 나는 인기 있는 신부님들이 계시다는 것은 알아도 정작 누구인지는 몰랐는데, 이 책에 참여한 명형진·문재상·방종우·심재현·은성제·이한석 여섯 신부님의 이름은 나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인지도 높은 사제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인 것부터가, 새로운 시도에 다소 조심스러운 우리 가톨릭 안에서는 꽤 참신하게 느껴졌다. 책은 가톨릭북플러스 웹진에 연재되어 독자들의 호응을 얻은 글을 여섯 부로 엮은 것으로,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욥 주교님의 추천사가 앞머리에 실려 있다.
읽는 내내 다시 그 성령칠은 카드가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우리보다 더 깊이 하느님을 향해 있는 사제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나는 자주 눈시울을 붉히며 반성했다. 특히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서 자신을 비우는 이야기(2부)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매사에 열심이라 늘 무언가를 '해내려' 애쓰는 나에게, 내려놓음이라는 말은 뼈아프면서도 위로가 되었다. 여섯 부는 시련 속의 대화에서 시작해 비움, 사랑, 희망, 영혼의 돌봄, 그리고 두려움으로 이어지는데, 그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알게 된다. 잘 모르기에 오히려 더 가볍고 즐겁게 신앙생활을 해 온 나 같은 평신도와 달리, 이분들은 더 깊이 바라보기에 그만큼 더 무거운 걸음을 내딛고 계시다는 것을.
그렇다고 글이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신자가 아니어도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많아, 오히려 이런 출판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그리고 익히 알던 사실이지만 새삼, 사제들도 결국 사람이구나 싶었다. 다만 그 '사람이구나'는 사제를 낮추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더 존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사람으로서 더 무거운 신앙의 무게를 지고 산다는 것은, 아무리 부르심이 있었다 한들 결코 쉬운 길이 아닐 테니까.
경직된 조직에서 일하며 가끔 마주하는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보수적인 면모에 크게 실망했던 경험이, 나를 은근히 편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사실 나 또한 그 경직된 회사 안에서 어느새 고인물이 되어 가는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도 어리석음은 쉽게 바뀌지 않아서, 앞으로 드릴 기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성찰의 시간이었다.
마침 청년성서모임 요한 복음서 과정이 끝나 간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여기서 '끝까지'는 시간적인 끝만이 아니라, 정도의 측면에서 사랑할 수 있는 극한까지라는 뜻을 함께 품고 있다고 한다. 원어 '에이스 텔로스(εἰς τέλος)'에 '완전하게, 남김없이'라는 결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날은 더워지고 병오년의 반환점도 이미 꺾였다. 새해의 다짐은 온데간데없고 지친 몸뚱아리만 남은 것 같은 시기지만, 이번 계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한다. 신앙에서도, 일상에서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다면, 나는 하느님을 끝까지 경외하리라. 성령강림대축일에 시작된 작은 변화가 이 서평까지 이어지고 있다.
을지연습이 끝나면 사도행전을 공부할 기회가 생긴다. 멀어도 서울까지 다니며 배우려 하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성경과 관련 서적을 먼저 펼쳐 보니 성령의 활동하심을 이전보다 한층 깊이 있게 다룬다고 한다. 이 책이 여섯 사제가 직접 쓴 기도문(부록)으로 끝맺듯, 나도 기도로 이 글을 닫으려 한다.
성령께서 활동하시어, 고민하는 사제들에게 힘이 되어 주시고, 성당에 다니지 않지만 이 책을 찾아온 이들을 너그럽게 품어 주시며, 가톨릭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과 서평을 쓰는 이들에게도 지치지 않을 힘을 주시기를 청한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쉬운 시절일수록, 신앙이 중심이 되어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평화롭게 살게 해 주소서. 아멘.
다루고 싶은 주제: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인 우리지만 그런 에너지를 정치인에게 쓰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는데, 사실 그런 것도 우상숭배에 들어갈 수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잘못된 신앙의 태도에 대해서 논의해보고 또 그를 바로잡을 수 있는 방안을 서평단 혹은 평신도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야기 나누어보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