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탄생

📚서평

그리스도의 탄생

viana

2026. 04. 10
읽음 8

"하느님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침묵>의 엔도 슈사쿠. 그때의 이 강력한 질문이 아직도 그에겐 유효한가 보다.

거기에 하나더, "예수님은 왜 재림하지 않는가?"

 

그 모진 고통과 신자들이 받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핍박에도 침묵하는 하느님을 믿는 이들의 희망은 예수 재림.

그 재림이 없음에도 그를 신격화, 그리스도라고 믿는 건 어째서일까..

이 두 가지가 그가 놓을 수 없는 질문.

 

매우 인간적인 관점에서 명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그의 "왜?" 덕분에, 나의 "예.."를 비추어 보게 된다.

그러니까 그는 확실히 알아야 믿을 수 있는 사람.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어린 시절에, 어떤 경험도 없이 신자가 되었고,

근본적인 의문이 생긴 것을 끝까지 잡고 있는 듯 보인다.

 

복음 이야기를 순진하게 쓰인 그대로, 그렇구나.. 하는 나의 단순함이 결코 싫지 않다.

그리고 자신의 "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섬세하게 보며, 모든 자료를 찾아 보고, 행간을 이해하며

그래도 안 되는 부분은 작가적 안목으로 추측하여 최대한 아구를 맞추어 가는 모습 또한 대단하다 싶다.

결국 '아니다'를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받아들임'으로 가고자 함으로 보이니까.

그의 소설 <침묵>의 처절함과 <사해 부근에서>를 읽었을 때의 시니컬함이 여기서는 많이 차분해진 느낌.

 

그래도 예수를 이미 그리스도로 받아들인 나로서는

그의 추적, 인간 에수가 어떻게 사후에 신격화 되었는지 살펴가는 과정은 흥미롭지 않을 뿐더라 귀찮기도 했다.

예수 사후, 두려움에 도망쳐 숨어 있다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

하셨다는 말씀에 경악과 충격, 그제야 예수를 새로이 이해하게 된 제자들이

그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고백하며 예수를 구세주로 모시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까 생각.

 

내게 새로웠던 것은

예수님과 실제로 함께 살았던 제자들은 '생전의 예수'에 중점을, 바오로는 '그리스도'에,

즉 예수의 죽음의 의미와 부활의 신비에 중점을 두었던 것.

그리고 유대교라는 틀에 묶인 그리스도론과 유대교를 벗어난 다른 차원의 그리스도론이 대립하게 된 것이다.

 

"...... 인간은 자신이 구원을 위해 율법을 지키는ㄷ, 오히려 그러 인해 하느님에게서 멀어져간다. 이때 바오로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분리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그리스도라고 생가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낸 것이 하느님이고, 하느님은 인간과 화해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태어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죄 없는 예수가 인간의 속죄를 위해 모든 죄를 짊어졌으며, 그의 죽음이 구원의 길을 열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이 바오로로부터 나왔다는 새삼스러움.

반면 제자들은 그보다는 유대교 내에서, 율법 내에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믿음이 강세였고. 

그들이 "아직 그 정도까지 대담하게 신학적인 주장을 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바오로는 제자들의 그리스도관을 한층 더 진전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엔도 슈사쿠는 "예수가 참혹하게 죽어갈 때 사랑의 하느님은 왜 침묵하고 계셨는가?"

하는 자신의 질문을 제자들의 질문으로 만들어 탐구. 

그 결과, 복음서의 내용은 실제가 아니라는.

그러니까 나는 복음의 내용이 그 옛날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으나

엔도 슈사쿠의 말은, 그게 아니라, 당시 제자들이 예수님의 무력한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옛 문헌들.

예언자들의 예언을 예수와 연결시킨 것 뿐이었던 상태에서, 

그 후에 쓰여진 복음은 그 예언서들에 맞추어 구성된 것이라는 이야기.

나는 동의가 되지 않지만.

 

바오로는 생전의 예수를 알지 못하여 그의 관심은 인간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이미 예수를 신적인 그리스도로 섬겼고, 그러므로 그가 전한 것은 예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였다.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하느님은 침묵.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예수의 재림을 생각. 그러나 그리스도는 나타나지 않았다.

예수의 죽음에 더불어 야고보와 베드로, 바오로의 처참한 죽음 등 초기 그리스도교의 시련은 계속되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하지 않고 믿음을 유지. 예수는 그들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부활한 것.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지만. 

 

다 읽고 나니, 제목이 <그리스도의 탄생>인 것에 끄덕끄덕..

예수의 탄생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탄생이며, 즉 '그리스도교'의 탄생이라는 것.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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