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문장이 나를 멈춰 세우는 순간이 있다. 장 피에르 프레보스트의 『시편, 기도의 언어』는 그런 순간이 여러 번 찾아온 책이었다. 시편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통해 나는 시편을 ‘아는 것’과 ‘다시 만나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처음 마음에 걸린 것은 ‘거룩함’에 대한 설명이었다. 거룩함이란 황홀함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따로 떼어놓은 것’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는 말 앞에서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나는 그동안 거룩함을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만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시편의 거룩함은 세상 속에서 쉽게 소비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구별된 존재였다. 그 순간, 내 삶 속에서도 조용히 따로 떼어놓아야 할 시간과 마음이 떠올랐다. 아무에게나 내주지 않고, 함부로 흘려보내지 않아야 할 순간들 말이다.
책을 더 읽어가며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야훼’라는 이름이었다. 시편의 하느님은 추상적인 신이라기보다 모세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억압받는 백성을 위해 개입하신 인격적인 존재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시편의 기도는 이름을 부를 수 있는 분께 건네는 고백이었다. 그래서 시편의 언어는 때로는 원망처럼, 때로는 탄식처럼, 또 어떤 순간에는 어린아이의 투정처럼 솔직하다. 그 모든 언어를 허락하시는 분이 바로 ‘살아 계신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또렷해졌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해석은 내 시선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영광은 높은 곳에서 번쩍이는 빛이 아니라, 세상 안에 머무르며 드러나는 현존이었다. 하느님의 영광은 특별한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한가운데 체류한다. 슬픔 속에서도, 불안 속에서도, 기도의 언어가 멈추지 않는 그 자리에서 하느님은 여전히 계신다.
『시편, 기도의 언어』는 시편을 다시 기도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시편은 잘 믿는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끝내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언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언어를 끝까지 듣고 계신 분이 있다는 사실이, 오늘의 나에게도 조용한 위로가 되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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