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결코 내가 늘 그랬듯, 한 번 읽고 독후감을 쓰는 그럴 책이 아니다.
그렇다고 두 번이나 세 번 읽고는 쓸 수 있는가?
아니, 이 책은 각각 주제가 있는 단편들의 모음.
그 하나의 주제를 깊이깊이 음미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짧지만 심오한 문장들. 그 신학적 깊이로 천천히 곱씹어야 할.
참으로 깊은 통찰이 빛나는 저 문장들을 어떻게 다 담아낼 수가 없다.
신앙의 신비와 언어 너머 진리로 마음을 열어주는 훌륭한 안내서.
그러므로 한 달 안에 읽고 독후감을 올리기 위해서는 잘못 선택한 셈이나
이 책을 얻은 것은 은총이다.
소개 글에서,
‘역설’이 신앙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라는 내용만으로도 벌써 충분.
신앙과 인간 존재의 근본적 모순들을 탐구,
특히 하느님이 인간성을 취하신 것을 근본적 역설로
우리를 만나는 방식을 가장 깊은 신비로 제시한 것
그리고 각 역설들에 대한 고찰들.
신앙의 삶, 증언, 적응, 영의 요구, 육화, 무관심, 사회적인 것과 영원한 것 등.
그 가운데 「신앙의 삶」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닐 때, 진정 내가 되는 그 역설.
속은 점점 더 텅 비어져 빈방이 될수록 더욱 충만해지는 그 역설.
내가 아무것도 아닐수록 더욱 자유해지는 그 역설.
'0'이 되어감으로써 비로소 자아실현에 이르는 그 역설을.
「적응」에서는
누군가에게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내가 어떻게 그에게 영향을 끼칠 것인가..
어떻게 그를 하느님께 적응시킬 것인가..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적응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그에게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역설.
「무관심」에서는
그리스도교는 결코 승리하는 것이 아님.
지상적 효과를 먼저 추구하는 그리스도교는 진정한 그리스도교가 아니며,
추구했던 결과도 얻지 못할 것.
그것이 비록 비효과적으로 보이더라도,
오히려 그 목적에, 그 승리에 무관심할 때 추구했던 결과도, 승리도 있다는 역설.
「고통」에서는
고통이야말로 참으로 역설.
그야말로 "당신 뜻대로 이루소서", 받아들임으로써 진정 겸손한 존재가 되며
예수님의 극한 고뇌가 나의 고통을 지탱해 준다는.
고통을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낼 때, 그것은 연금술이 된다는 역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인 것을.
나의 수준만큼 알아들을 뿐.
그럼에도 앙리 드 뤼박 추기경의 깊은 통찰에 매우 기뻤다.
특히 「인간관계」에서의 한 대목에 얼마나 위로받고, 공감받았는지.
큰 기쁨.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듯한 사람들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비난은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그들은 내적인 부르심, 자신에 대한 의무에 충실할 뿐이다. 그들에게는 이 의무가 이웃을 향한 자신들의 첫째 의무일 수도 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찾고 표현하고 싶은 강렬한 필요성을 느낀다. 자신을 더 잘 잊고, 이기적인 자아로부터 더 잘 빠져나오며 적극적인 일에서 특히 그러하므로 겉으로는 더욱 무관심해 보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숨겨진 요소를 드러내라는 사명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숨겨진 요소는 모든 이에게 선이 될 것이다. 이러한 외면적 이기주의자들이 없다면 인류는 빈곤하리라! (p164)
얼마나 대단한 통찰인가, 완전 감동..
이 또한 역설. 역설 속에 진리가 깃들어 있다.
사명이라니, 완전 동시성!
<역설들>은 신앙이 단순한 논리로 환원될 수 없다는 드 뤼박의 신학을 집약한 책.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되짚게 한다.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를 만나는 방식을 가장 깊은 신비로 제시한다.
뤼박의 '역설들'은 단순한 철학적 사변이 아니라,
신앙인의 실존적 고민과 영적 여정을 담은 깊이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라는 말에 완전 동감.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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