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런데 주님, 당신께서는 제가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시는 마음 좋은 분이시지만, 때로는 일부러 딴청을 부리시며 제가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끌어다 놓고 시험하시기도 하는 짓궂은 분이라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저는 그러한 당신이 못마땅해서 쳐다보기도 싫을 때가 없는 것이 아니었어요.”1976. 4.24.
해인 수녀님이 종신 서원 준비 피정을 하던 1976년의 기록이 세상에 나왔다. 상대가 주님이 아니라 마치 허물없는 친구나 엄마한테 쓰듯 써 내려간 글들을 보니 나도 숨통이 트인다. 글이 쉽고 단순하다, 그리고 솔직하다. 수녀님의 매일의 기록을 보니 “아 기도는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일상에서 주님과 대화한다는 것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는데 해인 수녀님의 데일리 묵상노트를 보니 주님을 정말 편한 친구로 대하는, 그야말로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기록’이었다.
공동체 속에서 누군가 미우면 밉다, 봉사활동의 분주함에 피곤하다, 일이 힘들다, 글을 쓰는 게 힘들다는 등,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주님께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이렇게 수도원이 일기가 된 것에 놀랍고 또 멋지다.
“산다는 것은 사실 얼마나 큰 아름다움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쉽게 절망하고, 너무나 빨리 남을 오해하며 어둠으로 생활의 울타리를 두르는 듯 느껴지곤 해요.” 1976. 5.23.
“산다는 것에 따르는 온갖 갈등,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 모순, 부조리, 위선과 같은 것에 처할 때마다 놀라는 저라는 사람.” 1976.11.9.

내가 현재의 일상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그 당시 수녀님도 그대로 느끼고 글로 표현하고 주님께 도움을 청했다는 것에 큰 위로를 받았다. 수도원이든, 회사든, 가정이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구나. 수녀님도 그러한데 일반 신자인 내가 지금 내가 느끼는 억울함 절망과 같은 감정도 기꺼이 나의 일부로 받아드릴 수 있다.
기쁠 때는 기뻐서 노래하고 슬플 때는 슬퍼서, 몸이 아플 때는 고통 속에서 글로 노래했던 수녀님의 꾸준한 기록이 50년간 수녀님의 건강을 지탱해 준 것이구나!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자연 속에서 영감을 얻고 매일 벌어지는 일상의 고단함을 쓰고 쓰고 또 쓰면서 그 글로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그 꾸준함을 나는 존경한다. 닮고 싶다.
해인의 바다라는 표지가 예뻐서 마냥 아름답고 행복한 시인 줄만 알았다. 읽고 보니 삶의 현장에서 때론 치열하게, 때론 버겁게, 때론 작은 모과 향기에 가슴 설레던 수녀님의 진솔함에 오히려 더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이제 여든에 접어든 수녀님도 여전히 명랑하게 웃다가 또 혼자 얼굴 부끄러워 얼굴 붉히기도 한단다. 산다는 것은 그냥 그런 것이구나! 완벽하지 않은 완벽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충실하게 하루를 만들어간 꾸준함의 기록이 아름답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도 해인 수녀님처럼 나의 감정을 날 것 그대로 주님께 드리며 그분과 대화하기로 했다. 그리고 꾸준하게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했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발제 ; 해인 수녀님은 50년 전부터 꾸준하게 글을 쓰며 주님과 대화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어떤 것에 가치를 두며 시간과 노력을 꾸준하게 기울이고 있을까. 또 그 이유는 뭘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