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향심기도라는 주제로 우리를 복음의 관상적 차원에 투신하도록 유도한다. 이 향심기도는 우리가 살면서 받은 정서적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정서적 프로그램이며,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기 위한,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이 향심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것은 내 문제를 잘 아는 심리치료사와 함께 치유해 가는 과정과 비슷한 효과를 준다.
이렇게 치유해가는 과정 속에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고 우리 내면의 어두운 곳을 대면하고, 그 어두운 내면을 놓아버릴 수 있는 힘을 키우면서 거짓자아를 버리고 우리 자신의 참모습과 진실을 마주할 힘을 키워준다. 우리가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혼란에 봉착할 수밖에 없으며 그 혼란을 내려놓아야 우리는 변화를 기대하며 행복이라는 것에 근접할 수 있다. 결국 우리의 혼란함을 잘 잡아내고 내 안을 잘 들여다봐야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기중심적 행동동기의 늪에서 빼내어 온전한 인격체로서의 자유와 책임으로 인도하신다. 또한 이성과 믿음의 기초 위에 참된 양심을 갖길 원하시며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길 원하신다.
우리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려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고 하느님의 창조에 동의함과 동시에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것을 놓아야 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우리가 놓아야하는 것을 잘 못할때 토마스 키팅신부님의 버니 수사님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버니 수사님은 밝고 활동적이고 외향적이신 듯한데 트라피스트 수도회의 규칙에 따라 자신의 성향을 누르고 '초연함'과 순명하는 삶을 살았다. 그렇지만 그의 다정하고 사려 깊은 성격은 같이 수도하는 수사님들, 이웃들 , 하다못해 자연에게까지 관심과 사랑을 전하고 변화시키는 하느님을 닮은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그를 예수님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악마의 목적은 영적 여정을 지속하려는 결심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우리에게 세속적 유혹은 바깥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끊임없이 하느님을 기다리고 끊임없이 하느님을 신뢰하며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하라' 이 메시지에 의심이 든다면 악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 여정에 항구하려는 결심,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리라는 신뢰,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 이 세 가지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훈련이다. 성인 안토니오처럼 우리의 영적 여정을 포기하는 유혹은 이전의 삶에서 누렸던 것에 대한 자극적 이끌림이다. 우리가 잠시 영적인 은총에 취했다가 금세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경험을 많이 접하고 있을 것이다. 거짓자아를 이겨내고 참자아를 찾아가는 여정 안에는 우리가 하느님께 더 깊게 다가가는 은총과 함께 많은 유혹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영적 여정은 쉽지 않다.
하느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의 차원으로 전환하면서 거짓 자아를 정화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매번 새롭게 반복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영적 여정은 계속되는 유혹을 뿌리치고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가까이 가기 위한 노력인 것이다. 유혹을 받고 헤매다가 다시 찾아가고 날마다 초심자의 마음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한 매일 넘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유혹에 의해 흔들리지만 하느님의 길로 향하고자 하는 노력에 의해 자유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는 지금 하느님과의 사색적인 관계일 수도 있다. 그러나 토마스 키팅 신부님은 우리에게 하느님과의 친교적 관계에 이르도록 설득한다. 친교적 관계는 '투신'이라는 본질에 기반을 둔다. '나를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면 '투신'은 우리 일상의 시련을 덜어내고 주님께 가고자 하는 열망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언제나 유혹은 도처에 깔려 있고 우리는 항상 그 유혹에 빨려 들어간다. 향심기도는 이러한 유혹을 벗어나게 도와주는 힘이 되고 하느님의 길을 가도록 우리의 마음을 수련시킨다. 처음에는 하느님의 부재 속에서 시작하는 것 같지만 내적인 고요함과 침묵 안에 스며들면서 하느님과의 관계를 알아챌 수 있다. 우리가 원치 않았던 수많은 생각의 파도들이 물밀 듯 밀려들 것이다. 상상과 기억이 완전히 멈추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며 우리의 의지는 하느님께 흡수되고 자기 성찰은 사라진다. 이때 우리는 온전한 일치의 기도를 체험하고 모든 기능이 정지되며 하느님 안에서 쉴 수 있다. 이러한 온전한 일치는 변화의 일치이면서 향심기도의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신의 영적 체험에 대한 기쁜 마음 같은 것을 버리는 마음,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은 감정의 지배나 감정적 동요를 사라지게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몸과 마음과 영을 치유하고 가난한 마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다. 또한 참 행복의 의미를 깨닫고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할 수 있는 마음, 하느님 삶에 협조적이며 무비판적으로 타인을 수용하는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평화라는 질서의 평정에 도달할 수 있다.
순수한 믿음의 길은 우리가 영적 여정에서 어디쯤 왔는지를,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등의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고 순수하게 기도 안에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여정에 대한 적극적인 투신과 충실한 수련만이 순수한 믿음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이러한 변화의 일치를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나 사회에 대한 관심, 지구의 환경, 이웃에 대한 관심, 비폭력 등에 대한 관심을 저버릴 수 없고 항상 연민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질문 1.다른 이들의 깊은 신앙심에 질투를 느낀 적이 있나요? 신앙의 건조함을 느낄 때가 있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