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스리더스 8기로서 받는 세 번째 도서.
<역설들 Paradoxes>
다른 두 권의 책이름엔 별 느낌이 안왔는데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아,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내가 날라리 신자 생활을 그만두게 된 이유가 '의심이 있어 믿음이 있다, 의심은 믿음으로 가는 길이다'라는 책에서 읽은 문장 때문이었다.
이 역설 덕분에 내가 다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아직 모르는 수많은 역설들에 대해 알고 싶었다. 나름 모태신앙에 견진성사까지 받았지만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나도 많아서 좀 더 알고 싶은 마음도 컸다.
게다가 이 책의 저자이신 앙드레 뤼 박 추기경님이 내가 존경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같은 예수회 출신이셔서 괜히 더 좋았던 것도 있다.
처음에 목차를 읽으면서 좀 느낌이 왔다.
'내 생각보다 더 어렵겠구나.' 근데 진짜 어려웠다.
굉장히 추상적인 개념이 많아서 읽으면서도 문득 문득 그 의미가 제대로 이해가 안되는 것 같고 안개 가득한 깜깜한 새벽에 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려운 책 잘 읽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부분은 이해가 좀 되는 반면 어떤 부분은 영 두루뭉술하게 다가오질 않아서 같은 부분을 몇 번이고 읽었다. 나중엔 지쳐서 그냥 이해 안가는 부분도 한 번씩만 주욱 읽어나감.
이 책은 대중들을 위한 책이라기보다는 이미 어느 정도 천주교 교리에 대한 지식이 있고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 적합할 거 같은 느낌.
"지성은 진리에 대한 능력인가, 아니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명료함, 질서, 체계화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능력인가? 현실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힘인가, 혹은 정신적 건축물을 구축하는 도구인가?
자신과 다른 어떤 것을 발견하는 수단인가, 아니면 단순히 자기만족을 위해 자신이 선호하는 형태들을 창조하는 것인가?
지성을 숭배하는 것은 실제로는 지성을 배반하고 조롱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리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112
"정의와 사랑을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에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과 실제로 정의롭게 사랑할 수 있는지는 다른 일이다. 후자의 일은 모든 사람에게 어렵다. 그러나 전자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후자의 일을 실천하는 데 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섬기는 데 헌신한 그들의 뜨거운 열정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p.171
내가 두드려 맞은 부분. 입만 살아서 이야기하는 건 쉬운데 정말 실천이 어렵다. 일상생활에서 꼴도 보기 싫은 사람 (직장동료든, 지인이든, 친구든, 가족이든)을 보면서 그들을 위해서도 정의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가.....
일단 나는 굉장히 못한다. (그래서 기도하는 이유도 있음. 최근에 피정가서 신부님과 면담 고해성사를 하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 드릴 정도로 나도 고민인 부분.)그나마 다행한 점(?)이라면 나는 내가 이걸 정말 잘 못한다는 걸 알아서 입에 발린 소리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거나 섬기지는 않는다는 점.
근데 저 고민을 털어놓자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사실은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야."
저 말씀에 모든 게 술술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마리 하나는 잡은 느낌이었다. 문제의 패턴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
계속 노력해야한다. 언제쯤 나아질 진 알 수 없어도 그래도 계속 노력하다보면 조금이라도 발전이 있겠지.
"만일 신앙의 근거가 필요하다면, 신앙을 부르는 이성보다 신앙에 저항하는 이성에 더 근거를 둘 것이다. 사실 이성의 끝에는, 그것이 믿음의 이유라 하더라도, 부름과 저항이 내적으로 연결된 채 머무른다. 또한 부름과 저항은 똑같이 하느님 앞에서 피조물이다. 신앙이 충만함이라면, 그리고 신앙이 승리라면, 부름과 저항은 모두 필요하다." p.220
내가 가톨릭 신자라고 하면 주변에서 종종 들어오는 질문들이 있다.
"정말 신이 있다고 생각해?"
그들에게 내가 신앙이 있다고 하면 무언가 굉장히 비과학적인 것을 믿는 사람, 신 없이는 홀로 존재할 수 없는 아주 나약한 인간으로 날 보는 것 같은 묘하게 비웃는 느낌이 느껴진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이 첫 문장에 고스란히 있어서 놀랐다.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할 지 막막한 것을 이리도 명료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얼마나 고민하고 공부를 한 사람일지 가늠도 안 간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정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한 번쯤은 꼭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들을 빠짐없이 서술하고 있다. 고전 철학도서처럼 시간을 갖고 몇 번이고 꼭꼭 씹어먹어봐야 할 책이다. 10년 후엔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그 땐 어떤 평을 할 지 궁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