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의 걸음, 시대의 주름을 만지다
우리는 종종 ‘사제’라는 단어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곤 한다. 제단 위에서 향을 피우고, 세속의 소음이 닿지 않는 고요한 성소 안에서 엄숙한 기도만을 드리는 존재. 세상과는 단절된 채 거룩함의 명맥을 지키는 사람들로 그들을 규정하려 든다.
그러나 명형진, 문재상, 방종우, 심재현, 은성제, 이한석 여섯 사제가 함께 쓴 ‘사제들의 시대 공감’은 이러한 대중적 편견의 성벽을 부드럽게 무너뜨린다. 이 책 속의 사제들은 높은 제단 위에 서 있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차가운 아스팔트가 깔린 도시의 골목, 경쟁의 낙오자가 생겨나는 그늘진 변방, 그리고 매일의 고단한 숨을 몰아쉬는 평범한 이들의 일상 복가운데로 직접 걸어 들어간다. 제의를 벗고 시대의 풍랑을 정면으로 마주한 이들의 기록은 종교적 가르침을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예리하면서도 다정한 인간적 성찰로 다가온다.
이 책이 지닌 가장 매력적인 지점은 ‘하나의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표지에서 저마다 다른 몸짓과 표정을 짓고 있는 사제들의 모습처럼, 책의 갈피갈피마다 스며 있는 목소리 역시 다채롭고 결이 다르다. 또 눈부신 기술 발전과 디지털의 편리함 이면에 숨겨진 현대인들의 고립과 영혼의 허기를 놓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가상의 연결망 속에서 오히려 더 지독한 외로움을 겪는 이들에게, 사제들은 화면 너머가 아닌 눈앞의 온기로 다가간다.
그밖에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교사무대가 아니라, 상처 입은 이들의 곁에 함께 주저앉아 호흡을 맞추는 동반자의 자리를 택한다. 아픔을 거대담론으로 포장하지 않고, 구체적인 개인의 슬픔으로 치환하여 보듬는 태도는 읽는 이의 마음을 깊숙이 흔든다. 신앙은 주일에만 찾는 성당 안에 갇혀 있지 않다. 출근길의 만원 지하철, 관계의 균열에서 오는 피로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는 밤 등 우리의 평범하고도 남루한 일상 곳곳이 곧 기도가 이루어지는 성전임을 일깨워준다.
이 책은 거대한 사상적 태풍을 일으키는 거친 나팔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해 질 무렵, 낯선 길목에서 만난 조용하고 따뜻한 가로등에 가깝다. 시대는 날로 각박해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도는 자꾸만 영하로 떨어지고 있다. 효율과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공감’이라는 단어는 때로는 지나치게 연약하거나 비현실적인 가치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사제들은 공감이 곧 가장 강인한 생존의 무기이자, 무너진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울 유일한 결속력임을 증명해 보인다.
만약 지금 당신이 세상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길을 잃은 듯 막막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을 펼쳐보기를 권한다. 거창한 위로의 말 대신,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여섯 사제의 다정한 발걸음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내 안의 온기를 다시금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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