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의식
주님께 바라라. 네 마음 굳세고 꿋꿋해져라. 주님께 바라라. (시편 27:14)
불과 수년 전, 세계를 깊은 수렁으로 빠뜨린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에게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요컨대, 코로나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높아졌고, 이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는 단순히 코로나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 이상의 역량이 필요하며, 그 역량의 근간으로 회복탄력성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회복탄력성은 결국 우리의 심적 근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 근력은 곧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이 의식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의식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까? 안셀름 그륀 신부님의 <리추얼, 하루의 리듬>은 책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되풀이되는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의식’을 통해 풀어나갈 것을 제시한 것이다.
우리는 소소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사건들에 반응하고 또 대처하지만 실상 그 안에는 일정한 규칙성과 반복을 발견할 수 있다. 좀 더 쉽게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하루 종일 손에서 놓지 않는 스마트폰의 설정에서 이른바 ‘루틴’이라는 기능을 떠올려보자. 이 ‘루틴’이라는 기능은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특정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기능을 설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굳이 번거롭게 무언가를 조작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 상황에 맞게 스마트폰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륀 신부님이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도 단순화시켜보면 우리 스스로의 ‘루틴’을 만들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양한 상황은 사실 우리 모두에게 별 다를 것 없는 반복되는 일상들이다. 그만큼 그냥 지나치기 쉽고, 무감하게 대하기 쉬운 상황들의 연속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그륀 신부님이 제시하는 방법이 ‘의식’인 것이다. 이 ‘의식’은 거창하거나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 지나가거나 놓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륀 신부님이 강조하는 ‘의식’은 영성적으로 우리가 하나 하나 놓치지 말아야할 소중한 가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사랑’, ‘감사’, ‘희망’은 늘 우리 곁에 있는 공기와 같지만 우리는 그것을 무심코 지나치면서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경우가 많다. ‘의식’ 없이도 늘 주님의 뜻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살아가면서 먼저 붙잡고 매달리는 것은 현실적인 욕망과 그것을 향한 꿈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정작 그 순간 붙들고 매달리고 온전히 의탁하는 심적 근력은 그만큼 허약해지고 마는 것이다.
나 자신과 일치를 이루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주님의 마음에 들게 살아가는 것이 곧 ‘평화’라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그린 신부님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인 ‘의식’은 거창한 형식이나 틀이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단단히 하는 연습이자 수련이 아닐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참 많은 것을 놓치고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잊고서는 그저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있을까, 왜 다른 사람들은 행복해보일까에만 눈을 돌렸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의식(ritual)’은 곧 ‘자기성찰’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한다. 다만 막연히 ‘성찰’하는 삶을 강조하기 보다는 ‘의식’을 통해 하나씩 챙겨나감으로써 마음의 잔근육이 더욱 단단해진다면 결국 그것이 영육 간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시편 8:5)
*본 서평은 교보문고(아이디: trapeze)에도 게재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