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가 참혹하게 죽어 갈 때 사랑의 하느님은 왜 침묵을 지키고 계셨는가?’
(...)
그 해답은 가르쳐 주지 않았으나,
수수께끼를 해결할 자유를 부여한 채 떠났다.
259P
성경 속에서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택의 기회 즉, ’자유의지’를 반복해서 강조한다.
(창세기 2:16-17)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죽을 것이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고 남자는 선악과를 먹게 된다.
머리 위에 커다란 물음표가 생긴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
그런데 왜 이런 선택을 하는 ‘자유의지’를 주었을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쪽으로 명령하는 것이 사랑일까?
신학자 C.S.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에 악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없다면 사랑이나 선, 기쁨도 불가능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이유를 '사랑' 때문이라고 보았다. 강요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거절할 수 있는 자유까지 줌으로써 인간이 자발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기를 바란 것이다.
자유의지는 부모 자녀 사이와 닮아있다.
부모는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길 바라지만, 강제로 책을 읽게 한다면, 그것은 자녀를 성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녀가 스스로 공부의 가치를 깨닫고 책상에 앉을 때 진정한 성장이 일어난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 역시 이와 같다. 인간이 실수하거나 잘못된 선택(악)을 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을 선택할 때 느끼는 기쁨과 가치를 얻게 하기 위함이다.
"아이가 엄마의 조언과 반대되는 선택을 하면 속상하고 걱정될 수 있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선택의 권리' 자체가 성숙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자유의지란 '최고의 선(사랑)'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최악의 악(타락)'도 가능하게 하는 양날의 검과 같다. 타락한 천사 ‘루시퍼’는 ‘자유의지’로 교만을 선택해서 악마가 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엔도 슈사쿠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는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물음이 있다.
“왜 하느님은 그에게 (예수와 제자들) 이처럼 비참한 죽음을 내렸는가?
”하느님은 왜 구원의 손을 뻗치지 않고, 그저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그리스도는 왜 재림하지 않는가?“
예수와 함께 처형되는 것을 두려워한 제자들은 자신들의 석방을 조건으로 스승을 팔았다.
하지만 예수가 처형당하고 나서 배신했던 제자들은 자신들이 저버렸던 스승을 계속 믿게 된다. 그들은 머지않아 스승처럼 십자가형 등으로 순교한다.
257P
‘그들은 어떻게 강해질 수 있었을까? (...) 그런 강인함이 도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259P
이날부터 그들은 자신들이 저버린 예수를 기억 속에서 지울 수가 없게 되었다. 잊어버리고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예수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예수는 그들을 사로잡았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는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나타나고 부활했다.
272P
왜 이런 무력했던 남자가 모든 사람에게 잊히지 않는 존재가 되었던 것일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알게 됐다. 예수의 불가사의는 해석하려고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신비. 저자가 쓸 수 없었던 ‘예수와 예수의 제자 이야기’의 ‘X’인 것이다.
그렇다면 ‘X’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며 각자의 ‘X’를 찾으면 좋겠다.
지은이 : 엔도 슈사쿠 (遠藤周作) 일본의 대표적인 현대 소설가. 저서로는《하얀 사람》, 《바다와 독약》 등이 있다. 1996년 타계하기 전까지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읽은 후)
이 책은 제30회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작이고, 저자는 소설가이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상상했던 그런 소설이 아니었다. 등장인물이 나오고 대화와 사건이 있으며 흥미를 유발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역사와 신학을 절묘하게 엮어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야기한다. 지금 내가 읽는 부분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나의 얕은 ‘역사와 신학’ 지식의 경계에서 헤매고 있을 무렵, 베드로와 바오로가 죽음에 이르는 부분이 나왔다. 예수를 보지 못한 바오로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119P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그는 선교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 선교하며 겪었던 바오로의 고난 부분에서 ‘이것이 사실인가? 허구인가?’라는 판별의 끈을 놓았다.
192P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였고 옥살이도 더 많이 하였으며, 매질도 더 지독하게 당하였고 죽을 고비도 자주 넘겼습니다.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유다인들에게 다섯 차례나 맞았습니다. 그리고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 돌질을 당한 것이 한 번,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인 니다. 밤낮 하루를 꼬박 깊은 바다에서 떠다니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 늘 강물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에게서 오는위험, 이민족에게서 오는 위험, 고을에서 겪는 위험, 광야에서 겪는 위험. 바다에서 겪는 위험, 거짓 형제들 사이에서 겪는 위험이 뒤따랐습니다. 수고와 고생, 잦은 밤샘, 굶주림과 목마름, 잦은 결식., 추위와 혈벗음에 시달렸습니다."
(재밌었던)
베드로는 닭이 세 번 울 때뿐 아니라, 그 후에도 겁쟁이였다. 104p – 뜨하!!
(생각 멈춤 부분)
베드로와 바오로의 죽음 시대적 배경
로마의 주요 언덕에서 일어난 화재는 6일 동안 지속됐다. ‘이 대 화제가 네로의 계획이다.’라는 소문을 들은 네로는 소문을 무마 시기키 위해 희생양을 찾는다. 이후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참혹한 박해가 시작된다.
-216p 극도로 공포를 겪게 되면 이 별난 사람들이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1923년 일본의 관동대지진 때에 무고한 조선인들이 희생된 것도 이러한 심리 때문이다.
=> 저자는 일본 사람이다. 조선을 언급했다. 인간의 심리여서 그랬다고 하는 저자의 말에서 ‘지은 죄를 합리화시키려는 것일까?’ 아니면 죄를 고백하려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조선’ 언급에 잠시 멈춤! 책의 저자를 긍정해야 ‘읽기’에 몰입되기 때문에 숨을 고르고 다시 읽었다.
<인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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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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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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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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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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