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생한 콘클라베의 순간

가톨릭 예술

[preview] “프란치스코 교황”이 탄생한 콘클라베의 순간

프란치스코 교황 자서전 《희망》 미리 읽기 1화

2025. 03. 05
읽음 205

2013312일 화요일, 콘클라베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 저는 로마에 보관해 두었던 수단 두 벌과 몇 가지 필수품만 가방에 넣어 산타 마르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모든 것을 그대로 두고 왔죠. 막 읽기 시작한 책들,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성목요일 미사를 위해 준비해 둔 강론들, 정리하지 못한 물건들까지도 말입니다. 게다가 23일 토요일 귀국 항공권까지 이미 구매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성주간에는 어떤 교황도 즉위식을 거행하지 않을 테니, 토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면 되겠지.’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게 다였습니다.

 

그날 저녁, 콘클라베의 첫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관례상 일종의 예의 투표와 같은 것이었죠. 추기경들은 친구나 존경하는 이에게 표를 던지는데, 이는 오랜 세월 굳어진 관행이었습니다. 여러 유력한 후보가 있을 때, 저처럼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이들은 당선될 가능성이 없는 이에게 표를 던집니다. 이는 일종의 임시 보관표로, 상황이 더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린다는 의미였죠.

그래서 제가 몇 표를 받기는 했지만, 전혀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인 13일 수요일, 두 번째 투표에서도 저는 여전히 임시 보관표를 받았습니다.

세 번째 투표에서는 표가 조금 더 늘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유동적이고 아직 안개 속이었기에, 특별히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최선을 다한 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돌아가 그곳에서 주님 수난 성지 주일과 파스카 성삼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네 번째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개표가 시작되자 개표자는 늘 하던 대로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큰 소리로 또박또박 읽어 나갔습니다. 투표 결과를 기록하도록 모든 추기경의 이름이 적힌 용지가 각자에게 주어지는데, 여기에 득표수를 적었다가 나중에 반드시 반납해야 합니다. 이 용지는 백지이든 기록이 되어 있든 모두 불태워지며, 이 용지들과 투표용지들을 태운 연기로 바로 그 유명한 신호를 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전 콘클라베 때처럼 이번에도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조용히 묵주 기도를 바쳤을 뿐입니다. 개표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참 지루해서, 마치 그레고리오 성가 같기는 한데 훨씬 덜 조화롭게 들립니다.

그러다가 베르골료, 베르골료, 베르골료, 베르골료…….”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 왼쪽에 앉아 계시던 교황청 성직자성 전임 장관이신 브라질 출신의 클라우디오 우메스 추기경님이 제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성령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다섯 번째 투표, 그러니까 그날 오후의 두 번째 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개표를 시작하기 전에 투표용지를 세어 보니 한 장이 더 있었습니다. 투표 과정에서 두 장의 용지가 겹쳐 붙은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교황청 주교성 전임 장관이신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결국 재투표하기로 했습니다. 그 남은 표가 백지라 하더라도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개표도 하지 않은 채 모든 투표용지를 불태워 버리고 즉시 재투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콘클라베 참석자들은 다시 한 사람씩 투표대로 나아갔습니다.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각자 하느님의 뜻에 따라선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에게 투표한다고 선서했습니다. 그런 다음 일어나 접은 투표용지를 제대 위에 놓인 은쟁반에 올려서, 투표함에 넣은 뒤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이 엄숙한 의식이 115번 반복되었고, 마침내 선거인단 중 추첨으로 뽑힌 세 명의 개표자가 투표함을 들고 와서 표를 세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한 명씩 이름을 또박또박 읽어 나갔습니다.

 

제 이름이 77번째로 호명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때도 여전히 개표는 계속되었죠. 결국 정확히 몇 표를 받았는지는 모릅니다. 더 이상 귀 기울여 듣지 않았고, 박수 소리가 개표자의 목소리를 덮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추기경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개표가 계속되는 가운데, 브라질 타쿠아리 프란치스코회 신학교 출신의 우메스 추기경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저를 따뜻하게 포옹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그 말씀이 저를 깊이 찔렀습니다. 온몸으로 와닿았습니다. 바로 그때,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제 마음속에 떠올랐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최초의 공식 자서전 《희망》

* 사상 최초로 교황 재위 중 출간

* 2025년 희년 추천 도서

 

[가톨릭출판사 인터넷쇼핑몰] 예약 구매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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