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경 이야기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2025년 12월 21일 대림 제4주일

2025. 12. 20
읽음 56

7

3

💖 하느님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 1. 하느님은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실까?

어느 성지엔 반려동물을 위한 미사 지향도 올라온대요! 🐶💒

그만큼 사랑이 깊다는 뜻이겠죠.

하지만 하느님은 그보다 더 놀라운 사랑을 보여 주셨어요.

직접 사람이 되셨으니까요! 👶

 

👣 2. 하느님은 우리에게 맞춰오셨어요

영원하신 창조주께서 시간 안으로 들어오시고,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 인간의 약함을 입으셨어요.

그분의 사랑 방식은 위에서 내려오심”,

우리를 향해 발걸음을 맞추심이에요. 🚶‍♂💞

 

💭 3.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께 어떻게 맞출 수 있을까’?

하느님처럼 될 순 없지만, 그분이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볼 수는 있어요. 👀

《어린 왕자》의 말처럼, “사랑은 서로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니까요!

하느님께서 향하신 약한 이, 버려진 이, 소외된 그 자리.

그곳을 함께 바라보는 게 바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이에요. 🌿

 


 

어느 성지에 반려동물을 위한 미사 지향이 올라왔다는 이야기가 화제였다. 동물을 자녀처럼 키우는 건 보고 들어서 알고 있었는데, 미사 지향까지 올린다니……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랑이 얼마나 크기에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동물에 대한 사랑이 크다고 해도, 사람이 동물처럼 살지는 않는다. 네 발로 생활하지 않고 목에 줄을 매지도 않으며 다른 이의 손에 이끌려야만 외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사람인 채로 동물을 사랑할 뿐이다.

 


 

사람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은 다르다. 하느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이 되셨다. 비유가 좀 그렇지만, 하느님의 사람됨은 사람과 동물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를 감수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창조주이시고 사람은 피조물이다. 사람의 언어로는 이 차이를 초월(超越)이라고 한다. 창조주께서 사람을 사랑하셔서, 그 초월을 뚫고 내려와 사람이 되셨다. 이것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 가늠하기 어려워,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예를 든 것이다. 사람은 제아무리 사랑해도 다른 존재가 될 수 없고, 존재 양식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기어이 그렇게 하셨다.

 

창조주께서 피조계 안으로 들어오셨다. 홀로 부족함이 없으신 분께서 인간의 약함을 입으셨다. 영원하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분이 인간의 시간과 인간의 공간 안에 들어오셨다. 창조주께서 사랑하는 존재와 관계 맺는 방법은 사랑하는 존재에 당신 자신을 맞추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와 똑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사람에게 맞추셨다.

 

사람으로 태어나신 창조주를 맞이하기 위해 우리도 그분께 맞춰야 한다. 과연 우리가 그분께 어떻게 자신을 맞출 수 있을까? 우리는 신의 영역으로 올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낮추고 낮춰서 어떤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어린 왕자》의 작가 생택쥐페리가 《인간의 대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임을.”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과 발걸음을 맞춰 동행할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그분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는 우리가 그분께서 바라보는 곳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께서 가셨던 길을 따라 걸으면서, 그분의 마음과 감정, 생각을 헤아리고 맛볼 수 있다. 이 여정은 우리가 하느님과 맞추어 가는 길이다.

 


 

하느님을 따라가는 삶

 

의로운 요셉은 자신의 자존심과 판단, 계획을 모두 내려놓고 하느님께 맞추었다. 그의 모든 걸음은 하느님께서 이끄신 아내 마리아와 아들 예수님을 향했다. 자신만을 위한 결정을 했다면 아내를 맞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순종의 응답을 하신 성모님 역시 마찬가지다. 마리아는 천사의 알림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느님의 이끄심을 따랐다. 이는 어린 소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일치시켰다.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그렇게 하느님께서 바라보신 곳을 향하면서 예수님을 잉태하였다. 그리고 어린 예수님께서 자라날 때 곰곰이 마음에 깊이 새기는 모습도 그렇게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방향을 따르는 모습이다.

 

지금 우리의 시대에 창조주께서 사람이 되어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시고 어디를 향하실까? 이는 결코 어려운 질문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이목이 모인 중심이 아닌 누구도 마음 쓰지 않고 손가락질 당하는 변두리를 향하실 것이다. 그 길은 사람이 되어 오시는 창조주를 만나기 위해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를 통해 그분과 맞추어질 것이고 비로소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그분의 마음을 알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 오늘의 묵상 포인트

 

이번 주에 내가 한 작은 사랑 실천하나만 자랑해 볼까요?

 


 
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현재 의정부교구 성소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