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특집③ 교부들이 전하는 ‘부활’의 참된 의미

신학 칼럼

월간 특집③ 교부들이 전하는 ‘부활’의 참된 의미

화려한 성탄 뒤에 숨은 부활의 기쁨

2026.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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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지금도 우리 곁에서 빛납니다.

 

👀 초대 교부들은 낮과 밤, 씨앗과 열매 속에서 부활의 영광을 발견했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 부활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 부활을 추적한 교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오늘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밝히는 부활을 만나 보세요.

 


 

부활 vs. 성탄, 우리는 왜 크리스마스를 더 기다릴까?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를 봉헌할 때마다 강론으로 이런 질문을 건네곤 한다.

 

부활과 성탄 가운데 언제가 더 행복하신가요?”

 

사제가 건네는 질문에 정답을 잘 아는 신자들은 부활이요.”라고 응답하면서도, 내심 크리스마스요.”라고 대답하고 싶은 간절한 눈망울을 내비치곤 한다.

 

매년 주일인 주님 부활 대축일과는 달리, 주님 성탄 대축일은 평일이 될지도 모르는 달콤한 빨간날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만 기쁨을 나누는 부활과 달리, ‘성탄은 가족, 친구, 연인 등 수많은 이와 기쁨을 나누는 날이다. 내 생일도 아니지만 산타클로스의 선물 보따리라는 좋은 핑계로, 서로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니 왜 많은 사람이 부활보다 성탄이 더 기다려지고 더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은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그래서 이 기회에 화려한 성탄보다 어두운 밤 자그마한 촛불처럼 세상을 은은하면서도 분명하게 밝히는 부활의 참맛을 느끼기 위해, 산타클로스가 없었던 교부들의 시대로 잠시 떠나 보고자 한다.

 


 

부활을 추적한 사람들, 교부들의 시선

 

그리스도교 신학이 자리를 잡는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교부란 고대성, 교리의 정통성, 거룩한 생활, 교회의 인준이라는 네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저술가들을 말한다.

 

현대에 들어 고대성이라는 기준의 끝을 어디까지로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시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이후 이어지는 사도들의 시대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교회는 이 시대의 교부들을 사도 교부Patres Apostolici’라고 부른다. 좁은 의미에서는 열두 사도의 제자였거나 사도들을 직접 체험했다고 전해지는 저술가들을 가리키고, 넓은 의미에서는 신약 성경의 후기 경전들이 쓰였던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의 그리스도교 저술가들까지 포함한다. 이들은 초기 교회 신앙의 첫 번째 증거자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가장 가까웠던 이들이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산다고?” 초대 교회의 논쟁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오로 서간에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같은 율법학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논쟁이 종종 등장한다. 또한 바오로 사도가 유다인 최고 의회나 그리스 철학자들과 부활에 대해 논쟁하는 장면도 등장한다(마르 12,18-27; 사도 17,16-34 참조).

 

이러한 성경적 배경을 생각해 보면 초기 교회가 복음을 선포하던 당시에는 부활의 신학적 의미보다는 부활이라는 사건 자체가 가능한가?’에 대한 논쟁이 더 많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부활 사건의 가능성보다 부활의 의미 자체를 묵상했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로마의 클레멘스Clemens Romanus 교황이다.

 


 

낮과 밤, 씨앗과 열매: 자연 속에 숨은 부활의 단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는 부활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자연 속 표징들을 사용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시키시어 우리에게 맏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께서 끊임없이 부활을 선포해 주심을 압니다. 낮과 밤은 우리에게 부활을 일깨워 줍니다. 밤이 잠들고 낮이 솟아오릅니다. 낮이 가면 또다시 밤이 돌아옵니다. 곡식 심는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씨는 땅에 떨어져 썩지만, 주님의 섭리 안에서 다시 태어나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1코린 15,20-23.36-38 참조)

 

이처럼 교부들은 낮과 밤’, ‘씨앗과 열매라는 상징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했다. 이는 이후 안티오키아의 테오필로, 시리아의 에프렘, 니사의 그레고리오 등 교부들의 부활 신학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 두 가지 표상은 사도 교부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순환과 희생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순환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재하시는 섭리를 의미한다.

 

,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단순한 기적도, 우연한 사건도 아니다. 인간의 속죄와 영원한 생명을 위한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사건이며, 완전한 사랑이신 예수님의 희생적 선택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사건이다.

 

또한 부활은 단 한 번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들의 삶 안에서 계속 반복되며 마지막 날의 부활을 예고하는 신앙의 모티브가 된다.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빛, 부활은 새로운 시작이다

 

사도 교부 시대 이후 약 600년이 흐른 뒤, 동방 교회의 영적 스승으로 알려진 니네베의 이사악은 수덕에 관한 설교에서 부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2코린 4,6). 바오로 사도는 부활을 옛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사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옛 삶이란 복음의 빛이 그를 비추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생명의 숨결은 부활에 대한 희망 속에서 빛납니다. , 복음의 빛이 마음 안에 비추면 인간은 새로워지고 옛 삶은 사라지게 됩니다.”

 

이 시기에 이르러 교부들은 단순히 하느님의 섭리를 넘어, 어둠을 깨고 퍼져 나오는 새벽의 빛을 부활의 상징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복음 안에서 발견되는 하느님의 지혜, 즉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부활의 영광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우리의 옛 삶은 땅속에 묻히며, 거룩한 지혜의 빛과 함께 새로운 생명으로 그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시간이 지나 사라지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의지와 그리스도의 선택을 알리는 빛의 사건이다.

 


 

부활, 조용하지만 가장 깊은 선물

 

이제 우리에게도 부활이 다가왔다. ‘이 촛불을 향기로운 제물로 받아들이시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게 하소서.’라는 파스카 찬송을 봉헌하며, 빛의 예식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부활을 맞이한다.

 

우리는 종종 부모님의 일상적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다가 다른 이의 친절에 더 큰 감동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부모님의 헌신을 떠올릴 때 비로소 그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된다. 어쩌면 성탄의 화려한 선물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부활에 담긴 예수님의 진심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던 제자들 가운데에 서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부활은 밝은 빛과 함께 지금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건이다. 부활은 인간을 가장 사랑하신 하느님의 섭리 속에서 이미 그리고 아직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선택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주신 희생의 선물이기도 하다.

 

우리 신앙인의 삶도 어두운 성전을 은은하게 밝히는 부활초의 빛처럼, 이 세상 안에서 복음의 열매를 맺는 작은 겨자씨가 되기를 바라며,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한 모든 독자에게 진심 어린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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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통합사목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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