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 끝, 크리스토포로 성인과 함께하는 은총의 여정

영성과 신심

방황 끝, 크리스토포로 성인과 함께하는 은총의 여정

두 발로 전하는 기쁜 소식

2025. 07. 30
읽음 83

4

3

 

 

9살 무렵, 어린이와 청소년이라고는 나와 남동생 둘뿐인 군종교구의 작은 성당을 다닌 적이 있다. 어느 날 주임 신부님께서 성당 한쪽에 있던 창고를 작은 도서관으로 바꿔 주셨다. 책장 몇 개뿐인 소박한 공간이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 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내 기억 속에는 여전히 크고 넓은 장소로 남아 있다.

 

그곳에는 가톨릭 성인전에 대한 만화책도 많았다. 지금도 가끔 펼쳐 보는 만화책, 《예수님을 업은 크리스토포로》를 처음 만난 것도 그때였다. 아기를 업고 강을 건너던 그가 결국 세상의 무게를 짊어지게 된 이야기에 나는 깊이 매료되었다. 이후 크리스토포로 성인은 내게 가장 인상적인 성인으로 남았다. 여행과 순례를 다니면서는 내 삶에 더욱 깊이 스며들었다.

 


 

세상을 업은 크리스토포로 성인

 

크리스토포로, 그의 본래 이름은 레프로부스(Reprobus)’였다. 거인처럼 거대한 체격과 엄청난 힘을 지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이를 주인으로 삼고 싶었다. 처음에는 고향을 떠나 한 왕을 오랫동안 섬겼다. 그러나 악마를 두려워하는 왕의 모습을 보고 깊이 실망해 그를 떠났다. 그다음에는 악마를 찾아가 자신을 받아 달라고 청했지만, 악마조차 십자가를 피하며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악마마저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길을 나섰다.

 

십자가의 주인, 그리스도를 찾아 방황하던 그는 안티오키아의 주교 바빌라를 만났다. 악마와 함께하며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자 주교는 크리스토포로, 그리스도를 지고 가는 자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가장 강한 분을 찾는 여정은 사람들을 도울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가르쳐 주었다. 이후 그는 많은 이를 등에 업고 죽음의 강이라 불리는 곳을 건너도록 도우며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누군가 그를 찾아왔다. 아기만큼 작은 존재였다. 그 아이는 크리스토포로 성인에게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했다. 그는 아이를 등에 가뿐히 업고 건널 수 있었다. 하지만 걸음을 내디딜수록 아이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세상의 모든 무게를 짊어진 것처럼 숨이 턱 막혀 왔다. 아이를 간신히 등에 업은 채, 그는 강을 건넜다.

 

세상을 통째로 업어도 너보다는 가볍겠구나!”

 

그의 말에 아이는 대답했다.

 

너는 지금 세상 전체를 등에 업고 험하고 거친 강을 건넜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업고 있던 아기가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 순간 그가 들고 다니던 지팡이는 나무가 되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그 후,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살아갔다. 이를 문제 삼은 로마 황제는 그를 붙잡고 배교를 강요했지만, 크리스토포로 성인은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극심한 고문 끝에 순교했고, 그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여행자와 순례자의 수호성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하느님 안에 살아간다는 것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스무 살 무렵이었다. 나는 대학을 휴학한 채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고 있었다. 진로와 삶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던 시기였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명분으로 택한 장소는 속초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릴 적부터 익숙했던 데다 나는 바다가 주는 해방감을 늘 갈망했기 때문이었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생각보다 더 고요하고 안락했다. 외롭거나 어색하기는커녕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평온함이 밀려왔다. 혼자 보내는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후에도 속초를 몇 번이고 오가며 단골 식당이 생겼고, 지도 없이도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러다 제주도에도 혼자 가게 되었다. 신학과 입학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배낭 하나만 둘러멘 채 무작정 길을 나섰다. 성 이시돌 목장을 비롯해 여러 성지를 방문했고, 주일에는 하논성당길을 따라 순례했다. 그런데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머무는 내내 비 예보가 있었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상하리만치 비가 그친 것이다.

 

버스를 타고 서귀포 성당으로 향하는 내내 비가 왔지만, 도착하니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다. 편의점에서 핫바 하나를 먹으며 쉬는 동안에는 다시 비가 오더니, 길을 걷기 시작하자 또다시 그쳤다. 숲길과 흙길을 걸을 때는 단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순례를 마친 저녁, 여행 기간 머물렀던 가톨릭 청년 머뭄터 혼숨에서 담당자, 봉사자와 함께 식사하며 이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며, 저마다 삶에서 경험한 여러 은총의 순간을 긴 시간 나누었다.

 

사진 ⓒ 김윤우.

 

종종 이때의 일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다 문득, 여행이 단순한 여가를 넘어 세상을 배우고 나 자신을 깊이 알아가는 길이라면 의미가 더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토포로 성인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이를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났고, 방황하다 마침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여행을 하며 무엇을 찾고 어디로 향해야 하며, 무엇을 보고 어떤 길 위에 서야 할까.

 

나는 여행을 통해 세계를 누비는 동안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세상을 마주한다. 그리고 못생기고 불편하다고만 여겼던 내 발을 새삼 들여다본다. 평발임에도 체육대학에 진학했을 만큼 고생해 온 이 발은 순례길을 거뜬히 걷는다. 이제는 이 두 발로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 내 삶에 기꺼이 자리 잡는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15)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제 발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겉보기에는 울퉁불퉁하고 아름답지 않은 제 두 발일지라도,

당신의 도구로 쓰일 수 있는 걸음을 걸을 수 있다면,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당신을 향한 이 발걸음이 때로 고통스럽다 한들,

그것이 당신께 나아가는 길이라면, 주저 없이 기꺼이 내딛겠습니다.

 


 

<참고 문헌>

 

1)《예수님을 업은 크리스토포로》, 바오로딸

Profile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도보 여행을 하다 보면 때로는 예상치 못한 만남을 경험합니다. 길가에 피어난 작은 생명,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 광활한 하늘은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하고, 저를 주님께로 이끌어 줍니다. 혼자 떠나는 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는 경이로운 순례입니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삶의 조각들 속에서 발견하는 은총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