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아니야, 메시지야

WYD2027

날씨가 아니야, 메시지야

청년들의 웃음 속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다

202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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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희뿌연 하늘을 바라봤다. 지난여름 그 뜨거웠던 태양은 어디로 갔는지 얼굴을 가끔씩 빼꼼히 비출 뿐이었다. 927일 토요일에 야외 미사를 거행하기로 했던 만큼 날씨는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다. 하느님께서 이런 내 마음을 아셨는지, 미사 당일 아침 눈을 떴을 때 창밖으로 푸른 가을 하늘이 펼쳐졌다. 우천 시 실내로 들어가 미사를 봉헌할 계획을 미리 세우기는 했지만, 맑은 하늘 아래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우리 WYD 센터 봉사자들과 미사에 참여하는 청년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리라고 생각했기에 그렇게 마음이 종종거렸던 것 같다.

 

지난겨울부터 WYD 센터 봉사자들이 청년들에게 순교 신심을 북돋기 위해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진리-순교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큰 방향은 위원회에서 매년 순교자 성월에 진행하는 ‘9월愛동행에 동참하며 청년들이 천주교 서울 순례길 3개 코스를 순례하도록 독려하는 것이었다. 참가자에게는 순례자 여권이, 완주자에게는 위원장 주교님의 축복장과 선물이 추가로 수여될 예정이었다. 감사하게도 위원회에서는 WYD를 위해 여권 500개와 순례자 키트를 지원해 주었고, 이를 바탕으로 참가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순례자들의 참가비는 교구 내 사회 복지 기관에 기부하기로 하여 이번 순례의 의미를 더욱 깊게 했다.

 


 

맑은 하늘 아래 피어난 감사의 미사

 

9월 한 달 동안 순례길을 걸은 뒤, 마지막 행사로 청년들이 함께 도보 성지 순례를 하고 순교자 현양 미사를 봉헌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겨울 봉사자들과 함께 새남터에서 절두산까지 강변길을 약 1시간 동안 걸으며 직접 답사했다.

 

그러나 같은 날에 여의도 한강 공원에서 불꽃 축제가 열리면서 강변 자전거 도로가 전면 통제되었고, 도보 성지 순례는 계획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염수정 추기경님께서 큰 관심을 보이시고 청년들과 직접 함께하기를 바라셨기에, 청년들이 준비한 청년들을 위한 순교자 현양 미사는 더욱 풍성한 은총의 자리가 되었다.

 

담당 신부님의 동반 아래 청년들은 체계적으로 업무를 나누고 각 자리에 필요한 안내 봉사자들을 섭외했다. 또한 순례길을 완주한 청년들에게 배부되는 축복장에 이름을 캘리그라피로 써 주기 위해 여러 봉사자들이 함께했다. 절두산 순교성지 내 성 김대건 광장에 현수막이 걸리고, 텐트와 500여 개의 의자가 펼쳐지면서 현장은 조금씩 분주해졌다. 잠시 후 주례를 맡으신 추기경님이 도착하시면서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 중에도 몇 번이나 하늘을 봤다. 이렇게 좋은 날씨를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이 절로 피어올랐다. 여러 나라에서 온 청년 봉사자들이 다양한 언어로 독서와 보편 지향 기도를 맡아 준 덕분에 더욱 풍성한 미사가 되었다. 맑은 하늘 아래 봉헌된 미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다.

 


 

우리 안에 살아 계시는 하느님

 

미사가 끝날 무렵에는 순례길을 완주해 여권에 도장을 모두 모은 77명의 순례자에게 축복장을 전달하는 예식이 진행되었고, 마지막 순서로 누구보다 순교자들과 청년들을 깊이 사랑하시는 추기경님께서 힘 있고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전하시며 미사가 마무리되었다.

 

미사 후, 성 김대건 공원에 모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 순간 머리를 자른 봉우리라는 뜻의 절두봉(切頭峰)’이 우리를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기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친교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시간은 다를지언정 과거 이 자리에서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이들의 희생 덕분임을 생각하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때 순교자들의 이름을 딴 행사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우리가 순교자들을 공경하는 것은 그들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자리에서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은총임을 깊이 깨달았다.

 

미사가 끝나고 간이 제의실에서 추기경님께 이런 말씀을 드렸다. “추기경님, 날씨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날씨가 좋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이에 추기경님께서는 따뜻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 신부, 날씨는 하느님께서 결정해 주시는 것이니 하느님께 맡기면 되는 거야. 그것보다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 것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줄지를 더 많이 고민해야 해.”

 

결코 꾸중이나 지적이 아니었다. 어쩌면 WYD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내게 가장 필요했던 말씀이 아닐까. 마치 하느님께서 추기경님의 입을 통해 그 말씀을 전해 주시는 것 같았다.

 

미사가 끝난 뒤, 뒷정리를 하며 기쁘게 웃고 이야기 나누는 청년들의 밝은 모습이 내 등을 토닥여 주는 것 같았다. 하느님께서 이미 우리 청년들 안에 살아 계시고, 순교자들을 통해 오늘 다시 청년들과 만나셨음을 깨달았기에.

 

 

사진 ⓒ 이영제

WYD 청년 순례자들과 함께하는 순교자 현양 미사 미사 후에 (2025.9.27. 절두산 순교성지)

 


 

*다음 달에도 계속 전해 드릴 WYD 준비 소식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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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서울대교구 사제. 프랑스에서 교리 교육 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WYD 법인 사무국 및 기획 사무국 국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신자들이 신앙을 통해 하느님과 기쁘게 만나도록 다양한 분야에서 힘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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