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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이 가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집니다. 이 글은 “나는 내가 가진 것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소유와 집착이 어떻게 신앙의 응답을 늦추는지, 그리고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서 우리가 왜 망설이게 되는지를 묵상합니다. 시몬과 안드레아가 모든 것을 버리고 곧바로 따랐던 복음의 장면을 따라, 비움이 곧 상실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로 나아가는 길임을 성찰하며,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붙들어야 할 단 하나,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묻습니다. |
저의 짐은 매년 늘어만 갑니다. 너무나도 많은 것을 소유한 제 모습을 돌이켜 볼 때,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지기보다는 오히려 무거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무언가를 잃지 않으려 애써 움켜쥐며 살아온 시간 속에서, 문득 이런 질문이 제 마음을 멈춰 세웁니다.
‘과연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까?’
그 물음 앞에서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짐은 줄어들지 않고, 그것을 놓지 못하는 제 마음은 점점 더 단단히 묶여 갑니다. 그렇게 주님의 부르심 앞에서 망설이며, 또 한 걸음 물러서는 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아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태 4,19)
그들은 곧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얼마나 단순하고 담대한 응답입니까. 그러나 저는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제 마음이 부끄러워집니다. 욕망과 지식, 소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제 자신을 돌아보며, 결국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면 주님의 부르심에 즉시 응답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거리의 걸인들은 한 번 손에 들어온 것은 절대 남에게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위의 모든 사람을 의심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것을 누군가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런 모습은 결코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저 또한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갑니다. 내가 가진 것을 잃을까, 내가 아는 것을 남이 알면 내 자리가 위태로워질까 두려워하고 염려합니다. 그래서 늘 조심하고, 경계하며, 불안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마음의 평화는 멀어지고, 마음의 공간은 점점 좁아집니다. 결국 이런 삶은 하느님께 마음을 열지 못하게 하고, 내 안의 하늘을 잃게 만듭니다.
반대로, 소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함께 나누는 기쁨을 압니다.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기쁘게 응답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놓음’은 잃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위한 비움’입니다. 그 비움 안에서 주님께서 새롭게 채워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포기한 자리에 은총을 놓으시고, 우리가 내려놓은 손에 평화를 쥐어 주십니다. 그렇게 비움의 자리에서 우리는 비로소 참된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주님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십시오.”(1코린 1,10)
우리의 분열과 갈등은 대부분 ‘내 것’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됩니다. 내 생각, 내 주장, 내 자존심, 내 명예…. 이것을 내려놓지 못하면, 우리는 끝내 서로를 향해 닫힌 채 머무르게 됩니다. 하지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잠시 멈추며, 먼저 사랑하려는 용기를 낼 때, 그곳에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분은 갈라진 마음을 잇고, 미움의 자리에 화해의 꽃을 피우십니다.
이제는 움켜쥔 것을 내려놓을 때입니다. 오직 하나, 예수님의 사랑만을 굳게 붙들고 살아갑시다. 그 사랑 안에서만 진정한 일치와 기쁨이 이루어집니다. 내가 가진 것을 버릴 때, 주님께서 내 안에 머무십니다. 그때 우리 공동체, 우리 가정, 우리 본당은 하늘나라의 기쁨이 깃든 자리가 됩니다. 그곳이 바로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참된 공동체, 사랑이 살아 숨 쉬는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 오늘의 묵상 포인트
요즘 내 마음을 가장 무겁게 붙잡고 있는 ‘소유’는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