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성경 이야기

광야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2025년 12월 14일 대림 제3주일 | 자선 주일

2025. 12. 13
읽음 75

3

2

 

💛 광야를 어떻게 건너야 할까? 🌵

 

 1. 광야 =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

광야는 힘들고 외로운 곳 같지만, 사실은 💫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야.

세례자 요한도 그 거친 광야에서 회개하라!” 외치며 사람들을 새 생명으로 이끌었지.

죽음의 땅이 생명의 샘터로 바뀌는 기적, 바로 거기서 시작돼! 🌸

 

 2. 우리 시대의 광야는 어디일까?

고운 옷👗, 편리한 생활🚘, 넘치는 욕망💸 … 그런데도 마음은 메말라 있어.

함께보단 따로가 익숙하고, 관계는 끊기고, 세상은 점점 인적 드문 광야가 돼 가고 있어.

나무🌳, 🌿, 생명🐦까지 제자리를 잃는 이 세상… 우리가 만든 광야야.

 

 3. 현대의 세례자 요한이 되자!

주님의 길을 닦는다는 건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

사람과 사람, 인간과 피조물의 단절을 회복시키는 일이야.

그게 바로 진짜 회개고,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길이지. 🌈

 


 

삶의 조건이 거친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다. 광야는 모든 관계가 단절된 죽음의 땅이지만,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생명력을 되찾으면서 기쁨과 축복의 샘터가 된다. 세례자 요한이 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이유도 그들을 기쁨과 축복의 샘터로 이끌기 위함이다.

 


 

생명이 없는 광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광야가 하느님을 만나는 샘터가 되기 위해서는 세례자 요한을 만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세례자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마태 11,7-10 참조)

 

광야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나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을 찾고 있다면 헛걸음일 뿐이다. 우리 시대는 고운 옷을 입고 왕궁에 사는 것 같다. 온갖 편리한 것을 다 갖추고 좋은 것을 모두 누리면서도 욕망을 남김없이 채우려고 무엇이든 이용하려고 한다. 개인의 편리와 안락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가져다 도구로 삼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을 비롯한 이 땅의 피조물이 가진 원래 모습과 가치는 훼손되고 사라지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을 생명이 없는 죽음의 광야로 만들고 있다.

 

우리 세상은 이제 광야처럼 인적이 드물다. 함께 울고 웃을 사람도 별로 없다. ‘함께보다는 따로를 더 편하게 여긴다. 점점 사는 단위가 작아지고 사회는 파편화되었다. 또한 개성이 뚜렷한 사회라고 하지만 공동체가 지켜 주는 울타리는 기대하기 어렵다. 각자도생의 운명에 처한 현대는 인적 드문 광야에 사는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광야에서 만나는 사람은 전혀 반갑지 않고 위협적이기만 하다.

 

다른 피조물의 자리도 빼앗기 일쑤이다. 인간의 편리를 위해서는 나무도 풀도, 작은 생명 하나도 어디에도 발붙이기 쉽지 않다. 있어야 할 것은 사라지고 겨우 살아남아도 제자리를 잃게 되어 자꾸 낯선 일들이 벌어진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말 그대로의 광야가 되어 가고 있다. 우리는 고운 옷을 입고 왕궁에 살면서 온갖 편리와 안락을 즐기느라, 우리 사회가 어떤 생명체도 생존하기 힘든 척박한 광야가 되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힘없는 피조물일수록 그 고통과 피해에 가장 먼저 노출된다.

 


 

이 시대의 세례자 요한이 되기

 

편의와 이기적인 욕심에 따라 살던 우리는 이 땅을 광야로 만들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 시대의 세례자 요한이 되어 주님의 길을 닦는다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피조물 사이의 단절을 회복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그 단절을 회복시키는 노력이 열매를 맺는다면, 첫째 독서의 표현처럼, 광야와 메마른 땅은 기뻐하고 하느님의 힘이 가득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삶의 주변에 인적이 드물지 않게 하는 것, 풀과 나무와 다른 피조물들이 자신의 생명을 충분히 이어 가게 하는 것처럼, 실제 광야를 극복하는 방법과 똑같다.

 

대림 제3주일은 기뻐하여라(Gaudete) 주일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창조주의 탄생을 진정한 기쁨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세상을 광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내 이웃의 범위를 넓혀 가는 번거로움, 다른 피조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고로움으로 광야를 비옥한 땅으로 바꿔 가자. 그 비옥한 땅에서 구세주와 함께 기쁨을 맛보는 것, 이것이 바로 창조주의 뜻이 아닐까?

 


 

🙏 오늘의 묵상 포인트

 

요즘 일상에서 아… 여긴 진짜 광야다😩’ 싶은 순간 있나요?


 

Profile
의정부교구 사제. 현재 의정부교구 성소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함께 본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