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하나의 형벌로 다가온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두려움과 누군가를 떠난 빈자리를 마주해야 한다는 허무함이 동시에 찾아오는 순간이 바로 죽음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남기고 갈지는 각자의 선택이지만 무엇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죽음을 부정하고 뛰어 넘으려는 시도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이 애싸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발버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음은 형벌이자 고통이며 허무함이다
신앙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느님과 마주하던 낙원에서 스스로 죄를 선택하여 하느님과 함께 하지 못하게 된 인간이 짊어지게 된 형벌. 죽음을 마주하게 된 인간은 깨닫게 된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낙원의 삶이 바로 구원이고 영원하시고 생명 그 자체이신 그분과 함께할 때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을 넘어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형벌이
오히려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신비가 된다
그렇기에 죽음은 이제 두려움의 순간이 아니라 하느님을 마주보며 생명으로 동참하기 위한 순간이 되고, 교회는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해 도움을 주는 모태가 된다. 이미 그 길을 걸어간 성인들은 우리에게 이정표가 되어주며 병자 성사는 신앙인에게 용기를 주는 하느님의 손길이 되고 성모 마리아의 죽음은 우리에게 희망을 일으켜 준다.
그렇다면 죽음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만 동시에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할 수 있다. 인간은 기도로서 이 의미를 부여하고 선택하며 하느님께 나아가기 위한 자기 수덕의 시간을 거친다. 죽음 이후에 불확실한 상태에서 그저 하느님의 자비만을 바라기 보다 지금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기도를 하며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유혹과 죄를 씻어내려 할 때 죽음을 잘 준비하는 신앙인이 된다.
[죽음의 신비]은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 신앙인으로서 바라보는 죽음에 대한 묵상, 성경과 교회와 성사와 성인과 마리아를 통해 돌아보는 죽음에 대한 묵상까지 풀어준다. 조금 어렵고 긴 호흠의 문장으로 전해주지만 결국 죽음은 신비라는 것과 신비를 넘어서 하느님을 마주하는 삶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그런 점에서 위령성월을 맞이할 때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나누고 싶은 질문 : 가까운 이의 죽음에서 나는 어떤 감정이 자리하는가? 오늘 나는 죽음을 향하며 어떤 준비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