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한 사람을 위한 드라마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written by Juliana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찰리 채플린이 남긴 말이라고 하는데, 나는 종종 이 말의 앞뒤를 바꾸어 생각해 보곤 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이해하고자 할 때 그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이 명제는 ‘사람의 아들’이자 ‘하느님의 아들’로 불리는 한 남자, 수천 년 전 당도했으나 여전히 인간들 사이에서 수수께끼로 남은 한 남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가 접하는 예수는 멀리서 보기에 거룩함 그 자체이다. 그는 원죄 없이 태어나, 기적을 일으키고 죽음에서 되살아났으며 이 땅에 하느님의 교회를 세운 구세주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참된 진실이다. 그러나 그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한 남자의 삶은 더 깊어진다. 구체적인 얼굴과 표정을 가진 인물이 나의 삶 안으로 들어와 마음에 반향을 일으킨다. 얼마 전 읽은 소설,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를 당신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유다. 이 책은 분명 소설이지만 훌륭한 문학작품이 본디 그렇듯, 인간과 세상에 대한 본질적인 통찰, 그리고 삶에 대한 진실을 담고 있다.
《사랑의 사막》, 《테레즈 데케루》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는 프랑수아 모리아크가 쓴 이 소설은 예수의 생애, 즉 복음서 전체의 내용을 한 권의 소설로 환생시킨 작품이다. 복음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을 주로 기록하였고, 그렇기에 삶의 질곡을 겪는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는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따라서 많은 신자들이 말씀을 묵상하고 영적인 독서를 통해 ‘나의 예수’를 만난다. 그러나 모든 이가 이러한 훈련에 익숙한 것은 아니다. 만약 아직 나의 예수를 만나지 못한 이라면, 혹은 성경에 차마 다 담을 수 없었을 인간적인 모습의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이라면, 여기 모리아크가 만난 예수를 만나보자.
모리아크가 예수의 시선을 따라 묘사한 세상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인간들의 욕망과 결핍이다. 열두 제자를 비롯해 간음한 여인, 율법 교사, 헤로데, 바리사이의 복잡한 심리가 소설가의 시선으로 현재화된다. 삶의 어두움을 헤매는 이들은 각자가 가진 인간적인 결함을 십자가처럼 지고 있다. 세속적인 것과 육신의 욕망만을 추구하고(세리와 창녀), 사랑 받지 못해 원통해하며(유다), 남을 시기질투하고 교만에 가득 찬(바리사이), 그 모든 죄로 기우는 경향들이, 이 소설에서는 너무도 핍진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오히려 보편성을 갖는다. 아마도 작가가 살아낸 20세기 초반의 현실의 인간 군상이 그랬을 것이다.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한 죄악과 폭력 앞에 신은 부재하는 듯 느껴졌을 것이고 실제로 많은 이들이 회의하며 믿음을 져버렸기 때문이다.
빛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고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은 이 작품이 쓰인지 거의 1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날카로운 빛을 발한다. “그리스도의 메시지 가운데 사람들이 아주 완고하게 거부하고 내다 버린 것이 있다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서 모든 영혼과 인종이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는 믿음일 것이다.”(88쪽) 그렇다면 앞서 표현된 죄에 물든 인간 군상은 어떻게 구원 받는가? 하늘과 이웃,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죄를 지은 죄인에게 구원의 가능성은 열려 있는가? 모리아크는 피조물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예수의 마음을 묘사함으로서 이 문제를 풀어낸다.
육신을 입은 하느님은 모든 사랑이 그렇듯 이해받지 못해 화가 났고, 참기 힘들었고 때로는 분노했다.(28쪽) 그러나 동시에 그는 연약한 이들이 죄에서 돌아서서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고 뉘우치는 목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자신을 배반한 이들에게 입은 상처를 모두 덮을 만큼 큰 사랑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복음을 일면적으로만 읽어서는 이해되지 않던 예수님의 양면성 즉 인성과 신성은, 피조물의 구원을 위한 절대자의 안배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체험할 수 있었다. 소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가까이에서 만난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운명에 숨어 그 사람을 지켜보고 애타게 기다리시는 분’이었다. 이런 관점으로 다시 우리의 인생을 멀리서 본다면 어떨까? 당장은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 찬 비극으로 보여도, 결국엔 선하신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사랑의 서사로서 완결될 것이다.
그러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만큼 우리의 생생한 경험에 더 가까운 것은 없다.
무엇보다 우리 또한 예수의 수난을 통해서만 예수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 예수가 죽음의 깊은 곳에서 우리에게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고통의 마지막 자리에서부터 찾아온다.
예수는 우리 각자에게 이르기 위해 인간 지옥을 통과하는 일을 절대 멈추지 않는다.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예수》, 36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