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변명만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 나약함마저 은총이며, 온유함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은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습니다. 한없이 나약한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그 어떤 밧줄도 그저 종이처럼 쉽게 찢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밧줄을 타고 올라가 볼 생각은 엄두도 못 내던 나에게도 은총이 가득 내려졌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나의 나약함은 비난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이제 나의 나약함을 부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나의 나약함에 온유를...'
비참함과 나약함이 극복의 대상이 된 나에게 행복 비슷한 무엇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공허하고 고독합니다. 주님이 곁에 있다면 이리 고독할까 싶었습니다. 나의 비참함을 드리고, 나의 나약함을 온유로 감싸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행복에 다다를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고통만 주는 혼자라는 괴로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또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나 교황께서는 그 두려움과 고독의 원인이 되는 의심에서 벗어나도록 이웃을 도왔는지 질문받을 것이라고 일러 주십니다. 내가 내 이웃을 도아 왔는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질문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저 내 행복만을 위해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니 말입니다. 고립된 행복은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잠자던 나의 또 다른 눈이 조금씩 떠지는 듯합니다. 그 눈은 평생 보지 못했던 나의 이웃을 보게 해줄 것입니다. 아마도 새로운 눈이 떠졌으니, 바라보는 세상도 달라질지 모릅니다.
아마도 이 질문은 검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황께서는 주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우리의 삶은 주님에 대한 사랑을 검증하는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가장 긴 방학 숙제를 남겨둔 기분이었습니다. 이 숙제는 몰아서 할 수도 없고, 거짓으로 쓴 일기를 눈감아 주셨던 선생님의 아량을 구할 수도 없는 숙제입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나의 심장이 다시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합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양심이, 나의 신앙이 울리는 종소리의 떨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떨림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인생은 하느님의 심장박동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을 죄인들을 위한 십자가 제물로 삼으신 성부에 대한 끝없는 믿음처럼 단단하게 뛰며, 길 잃은 양을 찾아 숨차가 달려가시는 그 벅찬 박동이기도 하다가, 마지막엔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의 용서를 청하며 순명하신 그 잔잔한 떨림이 될 그 박동입니다. 나는 주님의 심장은 그렇게 뛰고 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심장은 그렇게 뛰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붉은 피를 나의 발끝에조차 보내기도 버거워하며 헐떡거렸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심장 박동을 보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장 박동을 나누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