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주님께선 나의 비참함까지 달라 하시네.

📚서평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주님께선 나의 비참함까지 달라 하시네.

술마시는토토로

2026. 02. 07
읽음 13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때문이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새하얀 종들이 세상의 어떤 소리와도 섞이지 않은 체, 영혼의 잠을 깨우듯 울리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종을 치는 분의 마음은 행복, 그보다 더한 하늘의 행복 속에 계실 것이었습니다.

 

실은 행복으로 가는 아주 쉬운 길을 엿보기 위해 이 책을 고른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행복은 그렇게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거저 주신 모든 것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 거저 받은 것이 '구원'이었다는 것도 몰랐으니까 말입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구원은 주님께서 거저 주신 선물입니다. 하지만 나는 모든 것을 빼앗기며 살았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갑자기 숨이 차옵니다. 내가 받은 것이 구원이었다는 것에 내가 거저 받은 모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돌아봅니다. 그러니 들이마시는 공기 한숨까지 죄스럽고 귀이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 이 죄인은 그 구원이라는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내가 거저 받은 것을, 거저 내어 준 적이 없어서 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하나 걱정하며, 또 난처한 듯 묻습니다. 이것은 평생을 해왔던 생때같은 물음입니다. 그런 어리석음과 불경함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주님의 대답을 전해주셨습니다.

너의 죄, 너의 비참함, 나에게 너의 비참함을 다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나의 죄를 달라니요. 이 차갑고 흉물스러운 나의 비참함을 달라니요. 나의 가슴속에선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가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어두운 죄의 동굴 속에서 평생을 살다, 처음으로 해를 보는 그 눈부심과 부끄러움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던 '감사합니다'라는 외마디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메아리가 되어 동굴을 맴돌다 결국 죄의 동굴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듯했습니다.

주님의 위로가 나를 살리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구원' 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머리는 멍해지고 온몸의 힘이 빠져, 잠시 모든 몸의 활동을 멈추고 얼음장같던 내 가슴의 해동을 느끼며 앉아 있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를 얼마나 잘 했는지, 아니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단 한 번도 나의 비참함이 나를 떠난 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은 주님께선 나의 비참함을 십자가 위에서 그 구멍 뚫린 손으로 받아 주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나약한 사람인지요. 그 나약함으로 인해, 무한한 사랑으로 받은 나의 삶을 끈 떨어진 가방처럼 자갈밭 위로 질질 끌고 다녔던 것입니다. 이것은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귀한 선물을 이리 막 다루어도 용서해 준 사람은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7-9)

만일 구원 경륜의 관점이 이러하다면,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온유함으로 우리의 나약함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그러나,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변명만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그 나약함마저 은총이며, 온유함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은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습니다. 한없이 나약한 사람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그 어떤 밧줄도 그저 종이처럼 쉽게 찢어질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밧줄을 타고 올라가 볼 생각은 엄두도 못 내던 나에게도 은총이 가득 내려졌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나의 나약함은 비난을 받을 것이 아니라, 온유함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이제 나의 나약함을 부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나의 나약함에 온유를...'

비참함과 나약함이 극복의 대상이 된 나에게 행복 비슷한 무엇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공허하고 고독합니다. 주님이 곁에 있다면 이리 고독할까 싶었습니다. 나의 비참함을 드리고, 나의 나약함을 온유로 감싸는 것만으로는 완전한 행복에 다다를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일지도 모릅니다.. 그저 고통만 주는 혼자라는 괴로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또다시 질문합니다.

그러나 교황께서는 그 두려움과 고독의 원인이 되는 의심에서 벗어나도록 이웃을 도왔는지 질문받을 것이라고 일러 주십니다. 내가 내 이웃을 도아 왔는지, 하나하나 빠짐없이 질문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그저 내 행복만을 위해 온 신경을 쓰고 있었다니 말입니다. 고립된 행복은 행복이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잠자던 나의 또 다른 눈이 조금씩 떠지는 듯합니다. 그 눈은 평생 보지 못했던 나의 이웃을 보게 해줄 것입니다. 아마도 새로운 눈이 떠졌으니, 바라보는 세상도 달라질지 모릅니다.

아마도 이 질문은 검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황께서는 주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우리의 삶은 주님에 대한 사랑을 검증하는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가장 긴 방학 숙제를 남겨둔 기분이었습니다. 이 숙제는 몰아서 할 수도 없고, 거짓으로 쓴 일기를 눈감아 주셨던 선생님의 아량을 구할 수도 없는 숙제입니다. 걱정과 두려움으로 나의 심장이 다시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합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양심이, 나의 신앙이 울리는 종소리의 떨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떨림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교황님의 말씀대로 우리의 인생은 하느님의 심장박동을 따라야 합니다. 자신을 죄인들을 위한 십자가 제물로 삼으신 성부에 대한 끝없는 믿음처럼 단단하게 뛰며, 길 잃은 양을 찾아 숨차가 달려가시는 그 벅찬 박동이기도 하다가, 마지막엔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의 용서를 청하며 순명하신 그 잔잔한 떨림이 될 그 박동입니다. 나는 주님의 심장은 그렇게 뛰고 계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의 심장은 그렇게 뛰어 본 적이 없습니다. 내 붉은 피를 나의 발끝에조차 보내기도 버거워하며 헐떡거렸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심장 박동을 보고 따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장 박동을 나누어야 합니다. 

나르시시스트는 머리를 빗고 끊임없이 거울 속의 자신을 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충고합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을 보고 웃으십시오. 이 조언이 당신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참으로 옳으신 말씀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웃지 않는다면, 그것은 행복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나의 거울 속 얼굴을 보며 웃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웃지 않으니 주님께서 내 마음에 들어오실 기회를 드리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딘가에 틀어박혀 아무런 의욕 없이 그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나는 행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아무런 걱정과 상심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보고 웃어야 했습니다. 그 웃음은 내 이웃에게도 보내질 웃음이며, 이웃과 함께할 웃음입니다. 이 조언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교황님의 말씀은 저에겐 진실이 되었습니다.

나는 이 웃음을 위해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여섯 가지 악습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원한, 격분, 분노, 폭언, 중상, 악의 이 여섯 가지입니다. 교황께서는 이것은 성령의 기쁨을 방해하고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키며 하느님과 이웃을 거슬러 저주하게 만든다고 전해 주십니다. 저 악습으로 나는 행복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이제 깨닫기 시작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질문들은 전혀 다릅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 가 아니라 바로 "무엇이 나에게 유익한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복론

 

아마도 그런 것인가 봅니다. 실은 주님이 주시는 행복이라는 것은 나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가지려 살아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실은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유익한 것과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에게 유익하지 못하니, 나는 나를 보며 웃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했던 나에게 삶은 언제나 공허함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행복이 무엇인지 주님께 묻기도 어려웠습니다. 그것은 내가 주님이 준비하신 행복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주님의 심장박동을 따르는 삶이 나를 유익하게 하는 삶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을 읽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없이 그리워졌습니다. 그분의 장난기스러운 미소가 몇 번이고 떠올라 더 많이 그분을 찾지 않은 것이 너무나 후회되었습니다. 아마도 그런 마음을 미리 아셨던지, 이 책을 저에게 보내주셨던 것 같습니다.

책을 읽은 일주일 동안 긴 피정을 다녀온 기분입니다. 매일 이 책을 읽으면서 '미제레레'를 듣고 있으려니 마치 하늘에 계실 교황께서 나를 찾아 주신 것 같았습니다.

작년부터 교회를 위한, 실은 저의 본당을 위한 작은 봉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적당한 일을 찾을 수 없어 많이 아쉬워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을 이 책의 서평을 쓰며 조금이나마 대신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오만한 마음이 무색하게 책을 읽은 제 스스로가 깊은 위로와 은총을 거저 받았다는 것을 다시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와 같이 막연한 행복을 찾아 헤매던 분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이 책에 쓰신 행복을 향한 15가지 방법을 전해 드립니다.행복을 위한 단 하나의 방법도 알지 못했던 나는, 왜 교황님의 미소에서 내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행복을 보게 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까요.

  1. 당신의 내면을 읽어 보십시오

  2. 당신은 단 하나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 당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십시오

  4. 자신을 향해 웃는 법을 배우십시오

  5. 건강한 조바심을 지니십시오

  6. 용서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7. 슬픔을 읽는 법을 배우십시오

  8. 위대한 꿈을 꾸십시오

  9. 환상을 파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마십시오

  10. 혁명가가 되십시오. 세상의 파도에 대항하십시오

  11. 실수할지라도 위험을 감수하십시오

  12.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걸어 보십시오

  13. 거저 주며 사십시오

  14. 어둠 너머를 바라보십시오

  15. 당신이 최고가 될 운명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온라인 서점 : yes24(id : empatia)
블로그 링크 : https://blog.naver.com/empatia/224175181211

 

 

 


 

 

1

0

공유하기

0개의 댓글

로그인 후 이용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