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필수로 따야하는 자격증 시험으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이제 한 반쯤 취득했을 때 왠일인지 여유시간이 조금 생겼다. 입사 이래 처음으로 공부 없이 지내는 주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 그런데 갑작스럽게 생긴 이틀간의 온전한 주말에서 느끼는 가벼움보다도 바로 직전까지 휘몰아쳤던 지난 한 주가 나에겐 더 무거웠다. 도로에서 슬슬 지글지글한 열기가 나올 때쯤 웃고 싶어도 더이상 웃음 짓기 힘든 일들만 연속으로 들이닥치는 게 살짝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채로 소진되어 걸어갈 때 정말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체감하게 되었다. 정확히 하자면 스트레스를 잘 풀 수 있는 수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예전에는 이런 책을 읽어야지 하고 저장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 기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책갈피 꽂아둔 책들이 높게 높게 탑을 올리는 것을 부담으로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해버려서 이건 조금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군, 하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몰라서 오랜만에 읽을 책을 고르느라 많이 방황하다가 결국 가장 많이 미뤄놨던 책부터 읽었는데 이틀동안 읽은 이 책이 나에게는 아주 큰 위안이 되었다. 문학을 먼저 읽을지, 읽어야 하는 경제 책을 읽을지, 영적독서를 할지 방황하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건 영적독서였기 때문에 종착역은 항상 정해져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
“주님.
저로 하여금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언제나 자유로운 마음으로 당신의 뜰에서 산책하게 해 주십시오. 거기서 마주치는 모든 형제들에게 무한히 정다운 눈길의 사랑을 주되, 조금도 그 사랑에 자신이 구애되지는 말게 하소서.
모든 것을 당신 안에 소유할수록, 제가 소유한 것들을 떠날수록 자유로울 수 있음을 오늘 더 깊이 알아듣게 하소서.” (p. 27)
“우리는 흔히 먼 곳에만 눈을 돌리고, 가까이 있는 것과 가까이 있는 사람의 보배로움에는 무심한 일이 많다고 어느 책에서 읽었습니다. 저도 퍽 자주 무심한 사람이 되고는 한다는 것을 오늘 더욱 뉘우칩니다.
이웃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만, 언제나 깨어 있고 노력만 한다면 아주 조그마한 일로도 이웃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분에게는 식사를 했느냐는 물음, 가족이 병으로 고생해서 근심하는 이에게는 병세가 좀 어떻냐고 묻는 조용하고 따뜻한 한마디가 상대방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음을 여러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p. 31-32)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면 예전에는 개발도상국으로 봉사를 하러 가거나, 아니면 노숙자들과 함께 지내는 그런 일들이 가장 힘든 일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긴 하나 지금의 나에게 그걸 똑같이 물어보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그렇게 봉사하는 삶만큼이나 매일을 잘 사는 것도 참 힘든 일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너덜너덜한 마음으로도 안간힘을 쓰고 가장 익숙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문득 작년 이맘때쯤 종강을 했다는 사실이 저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매일을 그렇게 들인 정성이, 그렇게 쌓은 당신과의 시간이 이토록 쉽게 퇴색되고야 마는 얕은 믿음이었나 싶기도 하면서도. 그때의 내가 낯설게 느껴지는 건 아마 내 안에 다른 것이 기준이 되는 마음이 자라났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고민을 저자인 이해인 수녀님이 과거 몇십년 전 똑같이 하셨다는 것이 나에게는 더 놀라웠다. 그 길을 동경했던 입장에서는 뭐랄까, 지극히 평범해보이는 한 그리스도인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더 푹 빠진 것 같다. 그만큼 솔직하게 보여내주신 것이겠지만. 그리고 이번 책의 시점에서 맡으셨던 소임이 원목 수녀님이라서, 지금 은행원으로 근무하는 내 입장이랑 비슷하게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솔직한 기도를 할 수도 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신기했다.
“주님.
바보라는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 제가 부디 모든 사람에게서 아름다운 점을 찾아내고, 그들이 당신에게서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달아 그들 앞에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게 하소서.
아무도 미워하는 마음 없이 평화로운 매일을 갖는 게 소원입니다. 사랑은 어렵군요. 그러나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렇게 자신과 싸워야 하나 보죠?” (p. 51)
“주님.
보다 더 현실적으로 깨어 있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직책상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할 수도 있겠으나, 필요 없는 말을 많이 한 뒤의 그 허전함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과의 만남도 즐겁기보다는 피곤한 것이 될까 두렵습니다. […] 모두들 제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p. 134)
“병원에서는 저도 모르게 사무적으로 행동하게 되어 걱정입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말을 하다 보니 그리 되기 쉬운가 본데, 무언가 묻는 사람을 쳐다보지도 않고 마지못해 대답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무리 귀찮아도, 피로해도 말입니다.” (p. 138-39)
“제가 여기서 일하는 동안 진심으로 옆의 형제를 사랑하여 도울 수 있도록,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불평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 오직 당신 안에만 모일 수 있기를 진정 바랍니다.” (p. 152)
이제와서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이 삶이 참 동경했던 그 길과 여러모로 비슷해보이기도 한다. 발령도 그저 당신 뜻이겠거니 생각해보면서. 지점이 본원이라면 출장소는 분원 같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자리를 옮겨서 늘 새로운 업무를 해야 하는 것도 평생을 다양한 사목활동으로 사는 모습과 닮아 있고. 그래서 내가 어느순간 여기에 있게 된 건 내가 무엇인가를 해내서가 아니라, 그냥 명동성당 가까이에 있어야 내가 살아서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불안하고 슬슬 엉망진창으로 굴러가려고 하는 나에게 숨쉴 구멍, 잡아줘야 하는 끈 같은 게 필요할 것 같아서.
며칠 전 있었던 세례자 요한 대축일에 점심을 혼자 먹게 되어서 그날도 명동성당에 걸어갔는데 그날 한 신부님께서 기도는 품격이라고 말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느님께서 아버지라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고, 그래서 그분의 자녀라는 그 품격을 잃지 않으려고 잡는 것이 기도라고 말씀하신 것이. 결국 중요한 것은 기도의 양이 아니라, 그 마음 가운데에 당신이 있느냐, 없느냐였던 것이지. 비슷한 맥락에서 칭찬을 받더라도 그걸 피해다니고 거절하라는 게 아니라 “무관해져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정말 너무나도 내 상황에 대입이 잘 되는 책이라서 이틀동안 모두 읽었는데 단숨에 읽어내고 나니 1976년의 수녀님의 일기가 끝나고 시점이 현재로 돌아와 어느덧 80대가 된 수녀님의 일기가 잠시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부록으로 1976년 초입에서 종신서원 일기로 책이 막을 내린다. 어찌보면 부록의 종신서원 일기가 1976년 1월로 수녀님의 가장 첫마음, 전 생애 통틀어 가장 설레는 마음을 담은 내용일텐데 순서가 가장 뒤로 가 있는 셈이다. 앞의 내용은 종신서원 이후 소임을 받으신 후 1976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날짜를 의식하지 않고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었는데, 종신서원 직후의 수녀님과 사회초년생으로 1년차도 안된 내가 갈등을 겪는 점이 참 닮아있어서 많이 와닿았다. 그리고 이 갈등이 언제쯤 해결이 될지, 그 나약함에 자꾸 지는 모습을 보며 성숙해진 영성은 가능할지 걱정하는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 겨울 일기까지 끝낸 다음 2024년, 25년의 수녀님의 일기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책 구성 순서가 참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첫마음을 간직하기가 참 힘들어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우리에게, 그런 순간을 지나와서 이렇게 되었단다. 하고 보여주는 것 같아서 괜히 힘이 나는 것만 같았다. 영화로 치면 가장 되고 싶고 이상적인 결말을 잠시 보여주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아직도 유달리 모든 순간이 다 타이밍이 안맞는 어긋나는 느낌이 들고 최악이라는 느낌이 드는 날이 반복되면 무너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분한 느낌이 든다. 억지로 기분을 올리려 해도 잘 올라오지 않고 그럴 때면 어떤 말을 들어도, 나중에 생각해보면 나를 위해서 해준 말인데도 그때만큼은 아니꼽게 들리고 공연히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내가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그런가? 하는 별별 생각과 또 그런 감정이 사소한 걸로 순식간에 뒤집히는 것을 보면 감정은, 참 무섭고도 강력하지만 동시에 약한 것인가보다.
그렇지만 결국 중요한 건 거기에 잠식되냐, 빨리 빠져나올 수 있느냐의 차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매일을 그렇게 명랑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져도, 시간이 흘러 영성이 한층 높아져도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그만큼의 지혜가 쌓임은 결국, 하느님께서 무엇인가를 refresh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텐데 그걸 빨리 인식해서 잡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인 것 같다. 그래서 절망으로 하루를 끝내는 게 아니라, 다시 다잡은 채로 웃으며 하루를 끝낼 수 있게 말이지. 그게 바로 새해 때 가졌던 내 작은 소망이었던 것 같다. 매일을 새롭게 산다는 것이.
“별로 길지 않은 이 세상을 여행하는 동안, 좀 더 기쁘고 유쾌한 얼굴로 걸어갈 수 있음은 얼마나 흐뭇한 일입니까.” (p.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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