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신비] 잘 죽고 살 사는 방법

📚서평

[죽음의 신비] 잘 죽고 살 사는 방법

원첼리나

2026. 05. 11
읽음 1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는 세상에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너와 나,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 뿐입니다. 모두 죽을 운명인 우리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죽음의 신비》를 읽으며 알아 나가려 합니다.

 세상 처음 지은 죄에서 탄생한 죽음은 형벌이었습니다. 저자인 슈파이어가 말하는 유한성의 처벌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멈추지 않았고 우리 신자들은 죽음 앞에서 천국과 부활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삶은 개떡 같이 살다가 잘 죽을 수는 없거든요

 

 최근 유행하는 밈으로 알게 된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님의 일갈이 생각납니다. 저도 잘 죽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죽음과 동시에 치러야 하는 심판 앞에서 당당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까요, 잘 죽기 위해서 어떻게 잘 살아야 할까요?

 이에 [또 하나의 죽음]이라 표현하는 개념에 집중해 보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죽음은 어떠한 부정적인 결과나 끝이 아닌 파견의 종료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으로의 파견을 끝내고 되돌려드리는 행위이며 주님께 바친 계약의 종결을 뜻합니다. 주님에게서 파견된 자들은 파견과 종료의 과정을 겪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걸친 사소한 성과나 세상의 평가에 몰입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결국 파견되기 전에 그동안 살아왔던 세속적인 삶을 중단해야 하는데, 이것이 앞서 말한 [또 하나의 죽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주님과 함께 죽은 자들은 영원한 생명의 법대로 살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 이후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방향성, 사랑의 나눔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굴절 없이 투명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든 이가 주님의 사랑을 넉넉히 받았다는 사실을 깊이 알고 나의 삶으로서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흠 없이 전하는 삶,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삶에 대한 추구를 목적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려 합니다.

 사실 지금 죽으면 주님께서 단단히 혼내실 것 같습니다. 타인에 대한 미움으로 얼마나 자주 죄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의 죽음은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닌 그분이 사랑하신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이었음을 상기합니다. 개인적인 원망과 시기를 버리고 더하여 세상의 욕심을 끌어안고 이 자리에서 죽으며 내일을 다시 태어나 살아보려 합니다. 어쩌면 매일 밤 새로 죽어가며 살아야 할지도 모르나 결국 그 끝에서 아버지께서 잘 살았다한마디 해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 아니겠습니까.

0

0

공유하기

0개의 댓글

로그인 후 이용이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