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순례자
-순례자인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최익철, 강태용 옮김
written by 효주

최근 지인들의 SNS 피드가 비슷한 색상의 옷을 입은 사진들로 뒤덮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바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2023 세계 청년 대회에 참석한 것이었다. 그들이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순간들을 바라보며, 2011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 청년 대회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프랑스,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약 2주간 지구의 많은 가톨릭 청년을 만나 신앙을 나누고 큰 은총을 체험했던 일은 죽는 순간까지도 기억나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이 여정이 끝날 즈음에 순례 동반자들에게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순례 때의 체험과 감동은 잠시뿐이라는 말이었다. 지금의 행복은 사라지고, 신앙생활 속에서 시궁창에 처박히는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기쁘고 찬란했던 은총의 나날은 짧았고, 그때의 감정을 신앙생활을 하며 다시 체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회의를 느끼는 순간이 매우 많았다. 어쩌면 이번에 리스본에 다녀온 신자들도 그럴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때의 나에게 어떤 부분이 필요했는지 분명히 안다. 그래서 오늘은 한 순례자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소개하려 한다. 바로 《이름 없는 순례자》다. 기도를 통해 주님과 만나고자 했던 한 순례자의 이야기에는 순례 때의 감동을 오래 떠올리고 유지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담겨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러시아 순례자는 갖가지 사건과 고난 속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며 그들을 통해 영적 깨달음을 얻는다. 그의 순례 여정 속에서 우리는 기도하는 방법과 그 마음가짐에 대해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다.
1. 기도를 반복하라
러시아 순례자는 끊임없이 한 기도를 반복하며 새로운 영적 단계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예수 기도였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몰랐던 이 순례자는 예수 기도를 알게 된 후 언제 어디서나, 심지어 잠들었을 때조차, 항상 마음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며 기도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 이 기도를 하루에 3천 번씩, 6천 번씩, 만 번 이상 바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시련의 시기를 거쳐 기도를 습관으로 만든 이후에는 기도의 재미를 깨닫고 그 안에서 행복을 느낀다. 그 결과 늘 평온하고 충만한 기쁨이 깃든 마음 상태를 유지하고, 어떤 이를 만나도 그들 모두 형제자매라고 여기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할 수 있는 한 반복적으로 기도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 역시 언제 어떤 순간에도 깊은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한층 더 영적으로 성장한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을 확신할 수 있다.
세속적인 걱정들이 너무 많고, 바빠서 성당에 갈 수 없다는 핑계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언제 어디에서나 기도를 드릴 수 있고,
기도를 통해 당신의 마음속에 하느님의 제단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름 없는 순례자》, 320쪽
2. 기도하며 삶을 돌아보라
이 책에서 흥미로웠던 장면 중 하나는 키예프 근교 성지에 도착한 순례자가 고해성사를 보는 부분이었다. 구체적으로 죄를 성찰했지만, 아주 중대한 죄는 고백하지 않았다는 그의 잘못에 관해 충고하는 사제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 죄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종종 하느님의 용서를 의심하곤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특히 이 신부가 순례자에게 준 ‘겸손으로 인도하는 고해성사’라는 글은 매번 고해성사를 보기 전마다 꼭 확인하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제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간의 느낌과 행동을 구체적으로 고찰한 결과를 기록한 글로 내가 가진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 종교적 신념’에 따른 행동이 올바른지, 자만심과 자기애로 가득 찬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내적 상태를 성찰할 수 있는 내용이다. 고해성사를 보기 전 이 글만 읽어도 훌륭한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이 성찰이 마무리되면, 우리는 일상에서 하느님 말씀을 끊임없이 묵상하고 기도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하느님 사랑을 온전히 체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의식하게 된다.
형제님이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해서이고,
믿음이 부족한 것은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없는 이유는 경건하고 진실한 지식을 찾는 데에 실패하고
영혼의 빛에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완전하고 명확한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이름 없는 순례자》, 256쪽
3. 기도하며 공부하라
순례자는 길 위에서 만난 스승을 통해 《자애록》이라는 책을 접한다. 그리고 성경 다음가는 가치를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이 책을 언제나 품에 들고 다니며, 구원과 기도의 신비를 깨우치고 나아가 이를 통해 알게 된 것을 길 위에서 만나는 많은 이에게 설명해 줄 정도로 이 책을 귀하게 여긴다. 강도를 만나 책을 잃어버린 뒤 그 아픔에 목 놓아 우는 그의 태도를 보며, 세상에서 단 한 권의 좋은 책만 읽어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책에 담긴 글자를 읽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될 것이다. 부지런히 하느님 말씀을 공부할 때야, 우리가 지닌 영적 문제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강력한 희망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영혼의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묵상과 영적 상담을 통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현명한 사람들과의 영적인 대화를 통해 적을 이겨 내야 합니다.
《이름 없는 순례자》, 257쪽
《이름 없는 순례자》에서는 한 영성 작가의 말을 소개한다.
당신이 만약 무엇인가 배우려고 한다면 그것을 가능한 한 자주 해야 합니다.
《이름 없는 순례자》, 334쪽
보통 순례자의 일과와 우리 삶이 너무나 다르기에 밤낮으로 기도하거나 끊임없이 기도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천국으로 향하는 지상 여정이 순례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순례길 위에서 영적 깨달음을 얻은 러시아 순례자처럼 우리도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것만이 순례의 감동을 더 오래 머물게 하고 기억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 눈을 떠서 잠들기 전까지 종일 예수 기도를 바쳤던 러시아 순례자처럼 하루 삶 속에서 모든 순간마다 예수님의 자비를 청하고 그 마음으로 그분을 더 알기 위해 애쓰는 자세가 필요하다.
2027년, 세계 청년 대회가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다. 다음 개최지로 ‘서울’을 호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이 책을 추천하셨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다시 만날 그날을 소망하며, 더 많은 청년이 이 책과 함께 기도 속에서 적극적으로 특별한 순례의 시간을 기다려 보면 좋겠다.
러시아 순례자의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이 책은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책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시길 권합니다.
이 책은 소리 기도가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2021년 4월 21일 수요 일반 알현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