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반의 수치심을 뚫고 피어난 진주: 엔도 슈사쿠의 『그리스도의 탄생』

📚서평

배반의 수치심을 뚫고 피어난 진주: 엔도 슈사쿠의 『그리스도의 탄생』

Kim stella

2026. 03. 24
읽음 3

예수님을 알지 못해서, 그분을 더 잘 알고 싶어서 시작한 가톨릭출판사 서평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첫해에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책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해서 서평 글을 쓴다는 것이 낯 뜨겁고 당황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냥 혼자 조용히 읽다 말걸, 괜히 출판사 서평단을 해서 창피만 당하는 것 같아 매달 후회하며 힘들게 숙제를 했었습니다. 두 번째 해에는 전년보다는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여전히 맹~ 했습니다. 세 번째 해가 되니 신학원에서의 공부와 맞물려 가면서 비로소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해에 서평 도서가 두 달에 한 권으로 변경된 덕분에 가톨릭 북클럽과 캐스리더스 활동을 둘 다 병행할 수 있었고, 그렇게 어느덧 가톨릭출판사 서평단 4년 차가 되었습니다.

연차만 쌓인 4년 차라 말 꺼내기가 부끄럽지만, 이번 달 서평 도서로 그리스도의 탄생을 마주하니 서평단 첫해에 어버버하며 읽었던 엔도 슈사쿠의 『나의 예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실 지난달 올해 북클럽 첫 모임 때도 쑥스러워 직접 언급을 피했었는데, 또다시 엔도를 만나게 되니 결국 3년 전 첫해에 나의 예수를 봤다고 고백합니다. 읽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책 페이지의 글자들을 본 적은 있습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가톨릭 출판사 서평단 활동을 10년은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네요.

엔도 슈사쿠는 서양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를 어떻게 하면 일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잘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지 한평생 고민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신앙은 마치 내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한 서양식 양복처럼 어색했습니다. 엔도는 오랜 시간 글을 쓰며 그 어색한 양복을 자기 몸에 딱 맞게 고쳐 입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번 책 그리스도의 탄생에는 그런 작가의 깊은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에서 엔도는 예수님을 조금 특별하게 바라봅니다. 당시 유다교 안에서 새로운 개혁을 꿈꿨지만, 결국 실패하고 처형당한 비극적인 인물로 본 것이죠. 엔도는 예수님의 삶을 진주조개 속의 작은 모래알에 비유합니다. 처음에는 조개 안에 들어온 거칠고 아픈 이물질이었지만, 제자들이 그 아픔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키워냈기 때문에 아름다운 진주 같은 종교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엔도는 『예수의 생애』에서 예수님이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고통받고, 그들의 짐을 함께 지며, 그들의 영원한 동반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의 여러 소설에서 그리스도는 인간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겪는 존재로 아주 강력하게 그려집니다. 이번 책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도 예수는 무력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엔도는 사랑 때문에 죽음을 택한 예수를 통해 우리가 하느님을 다시 인식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특히 엔도는 하느님의 침묵에 대해 제가 궁금해했던 이야기를 합니다. 하느님이 침묵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외면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비참하고 힘들 때, 하느님이 이미 우리 곁에 와서 함께 아파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은, 하늘에서 기적을 내려주는 강한 신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끝까지 함께 울어주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엔도는 하느님을 혼내고 벌 주는 엄격한 아버지보다는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이해합니다. 서양의 그리스도교가 전통적으로 잘못을 엄격하게 따지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엔도는 일본인들에게는 어머니처럼 그래도 괜찮다, 다 이해한다라며 아무 조건 없이 감싸주는 사랑이 더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엔도는 일본을 무엇이든 집어삼켜 녹여버리는 늪에 비유하곤 했습니다. 논리적이고 딱딱한 서양식 신관은 이런 늪 같은 일본 문화에서 뿌리 내리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조용히 수용하고 함께 젖어 들어가는 어머니의 사랑은 일본인들의 감성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습니다. 특히 전쟁에서 패하고 몸과 마음이 모두 부서진 당시 일본인들에게, 비참한 밑바닥까지 내려와 같이 울어주는 어머니 예수님은 그들의 슬픔과 열등감, 비겁함까지도 말없이 안아주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화려하고 강력한 힘을 가진 신보다, 인간과 똑같이 고통받는 무력한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진정한 신성으로 다가온 것입니다.

제자들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무서워서 모두 도망쳤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예수님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예수님이 자기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돌아가셨습니다. 제자들은 나중에서야 그 큰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나 같은 겁쟁이도 사랑하시는구나라는 깨달음이 그들을 변화시켰고,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엔도는 이를 연극의 제3막이라고 불렀습니다. 제1막이 예수님이 사람들과 함께 지내던 시기이고, 제2막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비극적인 순간이라면, 제3막은 죽은 줄 알았던 예수님이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는 시기입니다. 사실 엔도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은 예수가 어떻게 죽음 뒤에 영광스러운 그리스도로 불릴 수 있었는지, 그리고 스승을 배반했던 제자들이 어떻게 목숨을 걸고 가르침을 전하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엔도는 예수님이 돌아가신 뒤에야 제자들이 비로소 스승이 누구인지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제자들의 재발견이야말로 부활의 진짜 의미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제자들이 전한 사랑이란 바로 나의 가장 못나고 비겁한 모습까지도 이미 다 알고 계시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먼저 용서해 주신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밑바닥에,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제자들을 붙잡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으셨던 그 사랑이 곧 부활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도 처음에는 이를 바로 깨닫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이 놀라운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자기들의 배신이라는 잘못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그 큰 용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을 때, 진짜 복음이 시작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엔도의 이런 생각이 예수님을 너무 평범한 사람처럼 만든다고 걱정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엔도는 하느님이 직접 사람이 되어 우리 곁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가장 낮은 곳에서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무섭게 벌을 주는 아버지 같은 하느님이 아니라, 자식의 허물을 자기 몸처럼 아파하며 조건 없이 받아주는 어머니 같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의 탄생은 인간은 누구나 약하고 비겁할 때가 있지만, 하느님은 바로 그 비참한 밑바닥까지 찾아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때문에 우리에게 위로를 줍니다. 맞지 않는 양복을 제 몸에 맞게 고치려 했던 노작가의 따뜻한 손길은, 오늘날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우리 모두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온기가 되어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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