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학자 요한 아담 뮐러는 교회의 역사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인류에 전달된 빛과 삶의 원칙이 전개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이며 교황의 역사는 정통 교리를 신봉하는 가톨릭교회의 역사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관점에서 교황은 각 시기마다 등장하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교회의 정통 교리와 신앙의 연속성을 이어 가는 직무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인식 속에서 교황에 대한 이미지는 이와 상당한 거리를 두게 되었다. 콘클라베는 정치적 파벌 싸움이나 권력 구도로 해석되기 시작했고, 교황의 선출 역시 하나의 정치 이벤트처럼 소비되었다. 언론과 대중의 인식 속에서 교황은 성령의 식별을 통해 선택된 목자라기보다, 정치적 이해관계의 산물처럼 다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시선을 분명히 거부한다. 물론 콘클라베를 둘러싼 파벌, 출신 지역, 후보자들의 성향이 현실 정치의 언어로 설명될 수 있는 요소임은 부정할 수 없다. 저자 역시 그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만 머물 경우, 교황 선출이 지닌 신앙적 의미, 곧 성령의 이끄심 속에서 교회를 이끌 목자를 식별하는 과정이라는 본질이 가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저자는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을 미국인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선택된 인물로 서술한다. 이는 교황의 선출을 정치적 계산이나 지역 안배의 결과로 환원하려는 통속적인 해석을 넘어, 성령께서 시대에 필요한 목자를 선택하신 사건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저자의 신앙적 입장을 보여준다. 저자는 바로 그 성령의 작용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절차와 의례 안에서 드러나는지를 독자에게 차분히 보여준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저자가 특히 공을 들이는 부분은 교황 선출 과정이다. 콘클라베가 단순한 투표절차가 아니라 그 안에 기도와 침묵, 선서와 기다림으로 이루어지는 신앙적 여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은 이를 통해 시스티나 성당에 울려 퍼지는 기도, 복음서 위에 손을 얹고 이루어지는 서약, 그리고 흰 연기가 오르기까지 이어지는 긴 침묵의 시간이 모두 성령의 이끄심 속에서 이루어지는 식별의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교황 선출이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이나 체제의 변화가 아니라, 베드로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직무가 다시 현재 속에 모습을 드러낸 것을 의미한다. 즉, 교황 레오 14세의 선출은 한 개인으로서 갑자기 역사 무대에 등장한 인물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 속에서 베드로의 사명을 이어받았음을 의미한다. 이때 독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교황 개인의 배경이나 성향에서 벗어나, 교황직이라는 직무가 지닌 연속성과 무게로 옮겨 간다.
이를 통해 독자는 교황 선출에 담긴 본질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의 어둠 속에 빛을 제시하기 위해 교회가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어떻게 목자를 식별해 왔는지를 차분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잊고 있던 콘클라베와 교황직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교황은 권력의 정점에 선 존재가 아니라, 교회의 신앙과 직무를 온몸으로 짊어진 목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정치적 계산으로 설명되기 쉬운 교황 선출이 실은 성령의 이끄심 안에서 이루어지는 신앙의 식별이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는 측면에서 나의 신앙심의 바탕을 다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