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가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 때 - 시편, 기도의 언어

📚서평

단어 하나가 나를 기도의 자리로 이끌 때 - 시편, 기도의 언어

엘리사벳

2025. 12. 10
읽음 5

요즘 나는 마음이 자꾸 산란하다. 딱히 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몸과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 상태로 지내는 것은 나를 더 깊은, 딱딱하고 완고한 마음의 자리로 데려간다. 성탄이 다가오는데도 대림의 마음가짐을 품지 못하고, 오히려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마음. 이러다가 어느새 탈출기의 파라오처럼 굳어져 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하던 차에, 책을 신청해야 하는 때가 되었고, 마음은 이 책을 선택했다.

처음엔 그저 제목만 보고 골랐기에, 시편 속 단어들을 설명하는 사전 형식의 책일 줄은 몰랐다. 어떻게 묵상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마음을 조금 비우기로 했다. 단어 하나를 읽으면 그저 그 단어가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따라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단어를 묵상하는 방식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더 깊은 자리에 닿는 경험을 했다.

그저 사전처럼 배열된 단어들은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실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오래 잊고 있었던 내 신앙생활의 결이 드러났다. 눈으로만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던 나의 편협하고 좁은 신앙에서 어떻게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과 함께 길을 걷게 되고, 또 그 여정 안에서 마음이 동하고, 결국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던 나의 과거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아, 시편은 그 마음을 노래하는 것이구나! 작은 깨달음이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단어는 ‘마음’과 ‘눈’이었다. 시편은 ‘마음이 신뢰의 자리’라고 말한다. 상처받은 마음, 흔들리는 마음, 슬픔과 분노로 어지러운 마음까지도 결국 하느님께 놓일 수 있는 자리라는 사실이라는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를 한다. 주님께 탄식하던 기도하는 이는 결국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는 이와 같은 이라는 건 그가 같은 자리에서 하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깨달음은 그렇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눈 역시도 그랬는데, 시편 속에서 하느님의 눈은 심판의 눈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속이거나 미혹되지 않도록 살펴주는 자유의 시선이었다. “하늘에 좌정하신 분이시여 당신께 저의 눈을 듭니다(시편 123, 1).” 이 기도는 두려움이 아니라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고백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내가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의지하고 싶은 곳을 잃어버린 듯한 시기였기에, 더욱 마음 한가운데 가만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마음과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되면 결국 주님이 내게 보여주신 길이 보인다. 시편의 길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걷는 일생의 여정이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미로에 갇힌 것만 같고, 길이 끊어져서 다시는 그 앞으로 걸어갈 수 없는 듯이 보이지만 하느님은 언제나 여전히 우리는 이끄시는 분으로 계신다. 내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순간에도 그분은 함께하신다. 그리고 그 기쁨은 하느님께서 일상에 은근히 스며들게 하신 은총의 흔적이었다. 사소한 평범한 순간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도록 이끌어주시는 것. 멈추어 있다고 느꼈던 내 시간에도 그런 은총이 있었음을 책을 읽으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작은 사전은 화려한 해설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단어 하나를 건네주며 이 단어를 기도로 묵상해 보라고 조용히 초대하는 듯했다. 단어 하나에 마음을 오래 두면, 그 단어가 어느새 나를 기도의 자리로 데려다주었다. 

나는 이제 시편의 언어가 나에게서 먼 언어가 아니라, 내 삶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음을 쏟아놓는 일, 눈을 들어 바라보는 일, 작은 기쁨을 알아차리는 일, 길을 잃은 순간에도 하느님을 기억하는 일. 우리는 각자의 시편을 살아가고 있고, 각자의 단어로 하느님을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부름이 언젠가 조용한 기도가 되어 우리를 다시 일으킬 것이다.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의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마음을 들어 올린다. 

아주 작은 단어 하나가 빛이 되어 나를 기도로 이끌어 주는 이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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