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역설, 흔들리는 믿음

📚서평

눈부신 역설, 흔들리는 믿음

김정민 M. 막달레나

2025. 06. 14
읽음 20

신앙은 종종 삶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뿌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나는 앙리 드 뤼박의 <역설들>을 읽으며, 그 뿌리가 흔들리는 낯선 경험을 했다. 익숙한 위로가 아닌 불편한 진실 앞에서, 신앙은 나를 감싸주는 대신 조용히 밀어냈다. <역설들>은 신앙의 본질을 '역설'이란 키워드로 관통하면서, 이해되지 않는 모순과 어긋남, 그 안에 숨은 진리를 드러내는 영성 철학서다. 짧은 아포리즘으로 구성된 문장은 모호하고, 다소 불친절한 인상을 주지만 그 울림은 오래간다. 나는 그 미로같은 문장들 속에서 자꾸 길을 잃었고, 때로는 막막함을 느끼며 주저앉기도 했다. 무력함이 찾아왔다. 출구조차 찾을 수 없는 공간에 홀로 남겨진 장님처럼, 바닥을 더듬고 헤매면서 스스로에게 되뇌였다. 끊임없이 흔들리고 무너지며, 내 안의 십자가를 발견하는 여정. 그럼으로 결국 고통과 죽음을 수렴하는, 눈부신 역설의 신비를 깨닫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이 아닌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고통을 무시하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의 변모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의 슬픔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요한 16,20)

진정한 행복은 연금술의 결과일 뿐이다. p.180

 

<역설들>은 위로와 치유의 하느님을 말하지 않는다. 기존의 도식화된 구원 서사와는 달리, 뤼박은 명징한 깨달음을 주지 않는다. 움켜쥐려고 하면 모래알처럼 흘러내리고, 다가가면 무지개처럼 멀어지는 신앙. 인간이 매 순간 '감각적 확신'을 요구할수록, 하느님은 그들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으신다. 신앙은 정확히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완전한 질서가 아닌, 혼란과 모순 한가운데에서 더듬거리는 것.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욕망과 실패와 유혹이 혼재된, 피조물. 그렇기에 신앙 역시 낯설고 어두운 심연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걸, 뤼박은 강조한다. 진창 속에 몸을 담근 채 별을 동경하는 운명. 서글픈 역설의 이면이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사도 17,27-

 

뤼박의 <역설들>은 형이상학적 언어로 가득한, 불편한 책이다. 뤼박은 독자를 다독이며, 감싸주는 영성을 말하지 않는다. 존재의 심연을 침묵으로 해체하며, 낯선 신비를 마주하게 한다. 그는 나에게 익숙했던 하느님의 얼굴을 지워버렸다. 안전한 신앙 속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안주했던, 과거를 성찰하며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제때 원하는 답을 내려주지 않으시는 하느님이 원망스럽고, 회의와 불신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칠 것이다. 바닥부터 더듬거리며, 그분을 찾아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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