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엊그제는 정신과 외래를 다녀왔고, 어제는 니트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사업에 참여 차 복지관에 들렀습니다. 교수님 진료실에 들어설 때마다 머뭇거리고 서성입니다. 교수님이 “앉으세요. 왜안앉아요?” 라고 하시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파에 앉아 저의 근황을 나눕니다. HSK 4급에 합격한 이야기, 어반스케치 단체전을 무사히 마친 이야기, 저널북을 여섯 권이나 구매해 카드값이 많이 나온 이야기 등.
약은 2019년 11월 이후 지금까지 그대로입니다. 제가 병원을 다닌 지 어언 10년, 약이 완전히 확정되기 전까지 제 약은 항상 다르게 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주 잠에 빠졌고, 늘 누워만 있는다고 가족들에게 욕을 먹었습니다. 지금은 예전처럼 그렇게 누워만 있을 필요가 없고 누울 시간도 아깝습니다. 저를 진료했던 두 명의 전공의는 가끔 저에게 태도를 바꿀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교수님은 시종일관 한결같습니다.
어제는 복지관에 들러 사업 관련 초기 상담을 받았습니다. 담당 선생님은 제가 복지관에 들르는 동안 단 한 번도 뵌 적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저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제법 많이 물으셨는데, 저는 단 한 순간도 불편하거나 어색한 내색 없이 깊고 어두운 심연들을 꺼냈습니다. 어두운 가정사, 왕따와 폭력으로 점철된 학창시절 이야기, 대학(원) 생활 이야기, 중학교에서 시간강사를 했던 이야기, 병원에 다닌 이야기 같은 것들을 하면서 부끄럽게 눈물을 훔치고 말았습니다. 여자가 아닌 남자선생님이어서 굉장히 창피했습니다.
어제 모든 일과를 마치고 난 밤, 제 방에서 조용히 묵주기도를 올렸습니다. 사람들에게 갑질과 모욕을 오롯이 겪은 이후 성당에 나가지도 않는 주제에 묵주기도를 바칠 자격이나 있겠냐마는 그날따라 장미목 묵주로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를 10년 동안 담당한 교수님과 어제 대화 나누었던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위해서 빛의 신비 5단을 바쳤습니다. 기도제목은 딱히 없었고 저의 심연들을 기꺼이 받아주신 분들이기에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차마 내색은 못하고 홀로 기도드렸습니다.
수녀님의 비밀 일기를 읽는 동안 저는 저의 삶을 조용히 묵상해 보았습니다. 묵상하면서 무거웠던 머리가 조금씩 맑아졌습니다. 그리고 약에 눌리고 저녁을 먹고 나서 몰려오는 피곤이 사라졌습니다. 종교를 불문하고 남녀노소에게 존경받는 수녀님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일기에는 내면의 갈등과 주님과의 대화 같은 내밀한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갈등을 겪는 수녀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 또한 내적 친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단해 보이는 수녀님이지만 알고 보면 친근하고 속 깊은 옆집 할머니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성모성월의 중반부에 이르러 밤이 깊어졌습니다. 어버이날에 받았지만 저의 일정이 빠듯하여 오롯이 집중해서 읽기 위해서는 특정 시간을 온전히 빼야 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기 위해 빼어 둔 시간은 결코 소모되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다른 책을 읽을 때보다 훨씬 더 충만하고 가성비가 높은 시간입니다. 오늘밖에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 서평에 담을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가톨릭북플러스 리뷰 :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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