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생애》를 통해 예수를 좀 더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아, 이해와 믿음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구나.’라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엔도 슈사쿠는 예수 이야기 그 자체보다 예수가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었는가 - 제자들의 내면에서 그분이 어떤 방식으로 ‘믿음’의 실재가 되었는가 - 라는 질문에 깊이 천착한다. 그 시작은, 예수와 함께했던 제자들의 ‘흩어짐’이다. 십자가 위에서 스승을 잃고,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두려워하며 도망쳤던 사람들. 처음부터 굳건한 신앙을 지닌 존재가 아니라 겁이 나서 숨고 싶었던, 그래서 떠날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들은 다시 모이고,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목숨을 걸고 예수를 증언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흥미롭게도 엔도 슈사쿠는 그 이유를 기적이나 교리의 설명에서 찾지 않는다. 오히려 제자들 마음속에 남아 있던 아픈 기억, 미안함, 지워지지 않는 사랑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근원으로 밀어 넣는다. 버림받은 예수를 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지는 아이러니. 끈질긴 기억이 결국 그들의 삶을 붙잡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예수는 단순한 과거의 스승이 아니라 지금도 함께하는 그리스도로 그들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여기서 나는 ‘탄생’이라는 단어가 단지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믿음이 다가오는 방식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처럼 들렸다.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일은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성되는 사건이라기보다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 안에서 마음에 영적 탄생이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적 기억과 감정은 그 출발점이 될 수는 있지만, 그 기억이 믿음이 되는 결정적 전환은 성령의 은총이 마음을 열 때 가능해진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탄생’은 인간의 마음 안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믿음의 순간 - 아주 미세하고, 아직 단단히 굳지 않은 - 그 시작점에 가까워 보인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리스도교를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신앙이 실제로 마음에 자리 잡는 과정을 묻는 책에 더 가깝다.
한편으로는 낯설음도 느꼈다. 믿음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인간적인 감정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생겼다. 제자들은 완전하지 않다. 흔들리고 갈등하며, 때로는 서로 부딪힌다. 바오로 역시 처음부터 위대한 사도가 아니라 고집이 세고 충돌을 일으키는 인간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책이 전하려는 것은 해답이라기보다 방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믿음은 완벽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흔들리고 고민하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려는 시도. 그리고 그 시작은 인간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먼저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고 주시는 계시와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는 사실을 함께 놓치지 않는다면, 엔도의 통찰은 이해를 향해 나아가고 더 깊은 이해가 다시 더 큰 믿음과 사랑을 불러오는 방식으로 자라난다.
결국 이 책을 덮고 난 뒤 마음에 남은 것은 하나의 질문이었다. 나는 예수를 ‘아는’ 사람인가, 아니면 정말 ‘믿는’ 사람인가.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언제부터 믿기 시작했는가. 혹은 아직도 믿음의 시작점에 서지 못한 채, 이해의 자리에서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기억처럼 조용히, 그리고 깊게 스며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수는 단순히 기억되는 존재가 아니라, 잊히지 않는 존재로 남아 우리 삶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는 하나의 이름을 넘어 ‘그리스도’로 다가온다. 또 이 질문 앞에서 나는 여전히 답을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마태오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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