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_홍성남 신부, 또 다른 병실을 나서며.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_홍성남 신부, 또 다른 병실을 나서며.

술마시는토토로

2026. 08. 15
읽음 3

 
 

처음 이번 서평 도서들의 리스트를 보고, 큰 고민 없이 이 책을 골랐다. 제목도 좋았지만, 홍성남 신부님에 대한 개인적인 기억 때문이었는데, 아마 신부님은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나는 예전에 신부님이 사목하셨던 병원의 환자였다. 사경을 헤매던 시기였고, 깨어나고도 석 달을 그 병원에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도 큰 위로였고, 실은 나보다도 어머니가 더 많은 위로를 받으셨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고르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책을 선택한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나는 정확히 알 수 없는 곳들에서 지독한 고통을 느끼는 때가 지금도 많으며, 많은 고통 중 그 주치의가 바로 내가 되어야 함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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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들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들도 있었는데, 그것은 관련 내용들에 대한 책이나 강의들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지식의 형태로 남아 있기에, 마치 내가 그 치료제를 먹은 듯한 착각도 하게 된 탓이다. 하지만 이것은 치료제를 먹은 것이 아니라, 그저 처방전을 들고 약국 앞을 서성이는 것과 같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이 약은 삼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바라보며 격려와 단호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부님은 그런 이야기를 아주 쉽고 짧게, 우리들의 삶의 순간들에 대한 위로의 지침서로 적어가고 계셨다. 나는 그것을 꿀꺽 꿀꺽 물을 마시듯 마음의 목젖을 움직이며 한 모금씩 한 모금씩 들이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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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신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평생 죄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나 또한 스스로를 죄인으로 취급하며 어떠한 분노 같은 것을 집어던질 과녁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신부님은 죄와 잘못에 대해 지나치게 의식하며 살다 보니 그것이 몸에 밴 것이라고 하셨는데, 다음과 같이 조언해 주셨다.

첫째, 자신의 단점을 굳이 숨기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 자신의 단점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기보다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_홍성남

누구나 자신의 단점을 숨기려고 하며, 그 단점을 비난하며 스스로를 우울의 그늘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삶의 수많은 먹구름 중 하나는 이러한 태도에서 나타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단점이 없는 사람은 없으며, 그 단점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에, 나의 단점을 객관화시켜 한 발 떨어져서 보고, 내가 많은 사람들의 단점을 무심하게 바라보듯 나의 단점도 그렇게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자고 생각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나의 단점을 수치스러워하는 만큼, 그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그런 거리감이 필요하며 대신 자신의 장점을 키워나갔을 때, 나의 먹구름들은 서서히 태양의 빛을 반사하며 찬란히 빛나는 뭉게구름이 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언제나 비가 오는 검은 하늘 속에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것은 희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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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그 먹구름들이 생기는 걸까.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절대로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이 내 마음속에 꾸물꾸물 올라오는 것을 어쩔 도리 없이 지켜보고 있자니 무기력해지고, 우울은 그 무게를 끊임없이 더하게 된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아내려 그 이유에만 집착하다 다시 더 깊은 어둠에 갇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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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는 과거의 경험들이 만들어 놓은 모순된 감정들과 유아적 감정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분노,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 열등감 등 온갖 유치한 부산물들을 만들어 냅니다.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_홍성남

이 부산물들은 격렬하기 때문에 통제하기도 어렵고, 무의식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이것들은 실제 현실도 아니고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 현실이지만, 대인 관계에 구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셨는데, 확실히 나는 세상의 질서에 나 자신을 순위 매기고, 세상의 가치로 나를 바라보며 주눅 들고 있었다. 이것은 하느님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는 말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그 가치의 중심이 하느님과 내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것을 무기력하게 인정하고 사는 꼴이었다. 이것은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관계를 망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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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열등감이 되어 신부님의 말씀대로 나를 심리적인 노숙자로 만들며, 스스로를 길바닥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빛이 없는 어두운 뒷골목에 스스로를 방치하는 삶은, 분노, 우울, 열등감에 다시 한번 뒤섞이며 끈적하게 나를 그 길바닥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결국 이 뒷골목에서 걸어 나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 어릴 적 내면 자아를 발견하고 그 아이가 주저앉은 곳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이것이 나를 다시 세우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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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퇴원을 앞두고 긴 병원 생활에서 빠져나오려 할 때, 나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후 재활 과정에서의 좌절과 고통이 있었음에도 그 희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었다. 나는 더 건강해지려 했고, 끊어졌던 내 삶을 다시 이으려고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암울한 상황이었는데, 왜 내게 그런 희망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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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어느 영성가의 인용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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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만날 때 우리는 그분이 주신 인생의 즐거움을 제대로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할 것입니다. 그제야 우리는 자신이 받은 선물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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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나보다 더 나의 무너진 모습을 보며, 그 좁고 서늘한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주무셨던 어머니를 가슴에 안고 살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내가 만든 내 삶의 어두움에 더 숨 막혀 했던 것 같다. 나로 인해 그늘졌던 어머니에게 작은 빛을 드리려 했던 그 마음이 퇴색되어, 스스로와 주위를 어둡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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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나는, 나의 또 다른 병실을 나서려 한다.

 

온라인 서점 : yes24  id : empatia
블로그 링크 : https://blog.naver.com/empatia/22425187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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